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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의 소녀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큰 아이가 기욤 뮈소의 팬인 덕분에 그의 작품을 얻어 읽게 됩니다. <브루클린의 소녀>의 범죄 스릴러물이라서 감상을 적는데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아들 테오를 혼자 키우며 살아가는 베스트셀러 작가 라파엘과 소아과 의사 안나는 3주 후 결혼식을 앞두고 앙티브의 코트다쥐르 바닷가 펜션으로 여행을 떠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시작만 본다면 몇 건의 납치와 끔찍한 살인이 복잡하게 얽히는 범죄 스릴러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할 수가 없습니다. 라파엘이 안나에게 감추고 있는 과거가 있느냐고 묻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사실 사랑한다면서 연인의 과거를 묻는 사람치고 그런 과거가 있는 연인을 끝까지 사랑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날 감추었던 과거를 알게 되었을 때는 배신감에 치를 떨 것 같기도 하니, 어떤 선택이 좋은 선택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브루클린의 소녀>를 읽다보면 잘나가는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이전 작품에서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던 기욤 뮈소가 자신이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졌나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더 있습니다. 몇 사람의 작중 인물의 독백을 삽입하여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중에는 이미 죽은 사람을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아마도 읽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장치로 보입니다만, 반면 상황들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흩어진 조각들을 맞추려는 읽는 이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선호하는 설정 몇 가지를 가져가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서 미국에서 마무리된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띕니다. 그리고 의사가 등장한다는 점인데, 아마도 다양한 의학적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실제로는 클레어 칼라일이 신분을 감추기 위하여 이름을 차용한 안나가 앓고 있는 프리드라이히 운동실조에 대하여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이야기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여러 건의 살인이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집단에 의하여 저질러지거나, 주인공이 저지른 것이라는 이유로 말입니다. 특히 살인의 증거를 손에 넣은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권력을 쥔 사람과 증거를 맞교환하고 마는 것은, 그저 해피앤딩을 위한 장치라고 하기에는 뭔가 찝찝함이 남는 것 같습니다. 아니 권선징악의 결말을 기대했을 독자의 뒤통수를 치려는 것이었을까요? 특히 마지막 순간의 반전은 읽는 이의 의표를 찌르는데 성공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뭔지 억지스러운 설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헤밍웨이가 했다는 ‘파리는 언제든 가볼 가치가 있다. 당신이 그 도시에 제공한 것 이상으로 뭔가를 보상받게 될 테니까’와 같이 상황에 맞는 유명한 사람의 명언이 삽입되어 있는데, 책을 모두 읽고 보면 이 또한 앞서 말씀드린 마지막 반전을 준비하기 위한 맛소금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또한 마지막 반전의 순간에 나오는 이런 대목은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세상은 자식을 가진 사람들과 갖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지. 부모가 되면 훨씬 행복해지기도 하지만 무한히 약한 존재가 되기도 해. 자식을 잃은 슬픔과 좌절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거야. 평생 십자가를 짊어지고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고통이 주어지니까” 그런 고통을 겪어보지 못해서 그 감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 부분의 전제도 솔직히 전적으로 공감이 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은 아주 기뻤던 것 같습니다만, 돌아보면 평생 십자가를 짊어지고 언덕을 올라가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