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진자 세트 - 전3권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동유럽여행의 일정에는 오스트리아의 멜크 수도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멜크수도원으로 가는 길에 인솔자는 올 초에 작고한 움베르토 에코가 처녀작 <장미의 이름>에 대한 기획을 이곳에서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푸코의 진자>를 꼭 읽어보길 권하였던 것입니다.


에코의 서지목록에서 <푸코의 진자>를 처음 발견하였을 때는 먼저 철학자 미셀 푸코(Michel Foucault)와 관련이 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그의 학문적 배경이 선뜻 떠올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푸코의 진자’는 1851년 프랑스 물리학자 장 베르나르 레옹 푸코(Jean Bernard LAon Foucault)가 지구의 자전현상을 실험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푸코는 67m의 강철줄로 매달린 28㎏의 철구를 판테온의 돔에 걸고 기구를 이용하여 계속 진동시켰더니, 진자의 진동면이 시계방향으로 회전하여 36시간에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북극에서는 진자의 진동면이 24시간에 일주를 하지만, 적도에서는 회전하지 않습니다.


<푸코의 진자>는 서구사회에 오랫동안 전해오는 전설의 기사단 혹은 프리메이슨과 같은 결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내용만 1123쪽에 달하는 방대한 이야기인데다가 등장인물도 적지 않고, 무대 역시 유럽에서 라틴아메리카, 아시아대륙까지 망라하고 있어 이야기의 전체 구조를 가늠하는 일조차도 버거운데, 작가의 방대한 인문, 철학적 앎이 작품 곳곳에 펼쳐져 있어 쉽게 몰입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동사양의 고전은 물론 각종 기호학적, 수학적 표식들, 히브리어와 라틴어는 물론 각종 유럽어 들까지 늘어놓는 바람에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헷갈리는 바람에 뒤돌아가야 했는데, “에코 … 푸코 … 사이코”라고 했다는 출판팀의 하소연이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핵심 3인방, 카소봉, 벨보, 디오탈레비 등이 밀라노의 출판사 사장 가라몬드씨와 출판기획을 의논하는 과정에서 <푸코의 진자>에서 시작된 작가의 글쓰기 비결을 엿볼 수 있었던 점이 흥미롭습니다. 3인방 가운데 카소봉의 모습이 에코와 중첩되어 보이지만 사실은 3인방 모두가 에코의 분신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에코의 분신인 카소봉은 좋은 문헌목록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푸코의 진자 2권 406쪽) 이 방법은 관련 문헌을 수집하여 진위를 가리고 그 내용을 잘 정리하여 색인목록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실제 책을 기획하는 작업의 사례로 성전기사단에 관한 책을 만드는 작업을 소개하였습니다.


“만일에 말이죠. <악마 연구가들>의 작품에서 추출한 몇 가지 아이디어, 가령, 선전 기사단은 스코틀랜드로 도망쳤다거나, 『연금술 대전』은 1460년 피렌체 도착했다는 등등의 아이디어에, <분명한 사실은……>, <……임을 입증한다>, 이런 연결 어구를 입력시키면요? 뭔가 눈에 번쩍 띄는 게 나오는 게 아닐까요? 뭐가 나오면, 공백은 적당하게 메우고, 반복된 부분은 예언이라 명명한다면 적어도, 일찍이 출판된 적이 없는 미증유의 마술사 한 장(章)은 되지 않겠느냐고요.(푸코의 진자 2권 406쪽)” 아마도 <푸코의 진자>는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되었나 봅니다.


재미있는 것은 카소봉의 아이를 가지게 되는 리아는 자료의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능력이 카소봉 보다도 뛰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성전기사단에 관한 책을 쓰는 계기가 된 쪽지를 잘못 해석한데서 오는 오류를 바로 잡는 결정적 역할을 하지만 어느 순간 이야기의 중심에서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아 역학에 대한 궁금증을 일게 합니다. 리아의 의해서 전체 이야기의 핵심이 흔들리면서 자칫 ‘똥그랑 땡’(모든 이야기가 일장춘몽이었음을 나타내는 저만의 표현입니다.)으로 끝날 이야기가 벨보의 엉뚱한 짓 때문에 파리 공예박물관에서 성전기사단이 소집되는 것으로 상황을 다시 반전시킨 것이야말로 작가적 역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해서 성전 기사단이 현존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허구의 집단이라는 것인지 여전히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푸코의 진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다시 읽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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