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여행자, 트루바두르 지중해지역원 번역 시리즈 8
조세프 앙글라드 지음, 장니나 옮김 / 이담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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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여행’이라는 요즘 뜨는 용어와는 달리 트루바두르라는 이름은 생소하기만합니다. 그 생소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트루바두르(Troubadour)는 11-12세기에 흥성한 남프랑스의 오크어 음유시인이다. 좀더 늦게 흥성하는 북프랑스의 트루베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트루바두르들은 갖은 형식의 세속가곡으로 궁정연애를 노래했는데, 개중에는 planh (탄식), sirventès (풍자시), pastourelle (전원시), tenson (논쟁시), canso (칸소), 등이 있다.”고 합니다.


푸아티에 백작 기욤 다키텐으로부터 시작되어 14세기 최후의 트루바두르라 불리는 기욤 드 마쇼로 끝을 맺는 트루바두르 시는 전개하던 시기(1090-1140년), 황금의 전성기(1140-1250년), 그리고 쇠퇴기(1250-1292년)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기록에 의하면 일대기가 남아 있는 트루바두르는 111명으로 전체 트루바두르의 4분의 1 수준이라고 합니다.


<지중해 여행자, 투르바두르>는 낭시대학이 1907-8년 겨울학기에 개설한 강의의 교재로 사용된 것으로 <트루바두르들, 그들의 삶, 그들의 작품, 그들이 끼친 영향>이 원제입니다. 교재인 만큼 대중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중세 남프랑스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는 책읽기가 될 것 같습니다.


남프랑스는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아 라틴어의 영향이 크게 남아 있기도 합니다. 저자는 트루바두르 시를 노래한 언어적 특성으로부터 사회적, 예술적 특징 등에 대하여 기술하며, 몇 가지 대표적 시들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트루바두르의 신분은 귀족으로부터, 성직자, 하층계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는데, 여류시인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노스트라다무스는 제앙 드 노트르담(jehan de Motredame)이라는 트루바두르라고 합니다. 그는 상상력과 환상을 암시하며 정확한 사건들을 혼합하면서 트루바두르들의 전설적인 삶을 창조하였는데, 사람들이 신화에 불과한 속임수를 오랫동안 믿어왔던 것이라고 합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아름다운 기만과 문학적 농담 그리고 허풍이었다는 것입니다.


트루바두르 시는 기본적으로 서정적이었는데, 곡을 붙여 노래를 부르기도 했던가 봅니다. 가사만을 우리말로 옮기다보니 산문형식이 되어 원래의 느낌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프랑스 샹송과는 다른 장르인 샹송이라는 형식의 트루바두르 시의 예를 들어보면, “초록 수목과 잎이 보이고 꽃들은 과수원에서 활짝 피었네. 밤꾀꼬리는 높고 맑은 소리를 만들어 멋진 노래를 지저귀네. 새 소리를 듣는 나는 행복하고 꽃을 바라보아 기쁘네. 만족스러운 나, 나의 귀부인도 그러하네.(107쪽)”


노랫말에서 보는 것처럼 귀부인에게 바친 노래였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트루바두르와 귀부인과 사이에 연분이 생기기도 하였는데, 특히 신분상에 차이가 나는 경우에는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심지어는 주군의 부인과 염문을 뿌려 죽음을 맞거나 쫓겨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트루바두르는 결혼한 기혼여성에게만 찬미와 경외감을 바쳤다고 합니다. 찬미와 경외감이 사랑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데, 사랑이 성숙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그렇기에 참을성이 필수적인 덕목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결혼한 기혼여성이 상대였기 때문에 연애에 있어 신중함은 반드시 필요한 첫 번째 덕목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가명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사랑에 눈이 멀게 되면 신중함은 저 멀리 달아나기 마련입니다.


아마도 오늘날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에두르는 듯해서 성에 차지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직설적인 것이 때로는 사람을 질리게 하는 경우도 있으니 한번쯤은 에두르는 방식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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