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구두
헤닝 만켈 지음, 전은경 옮김 / 뮤진트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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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누구도 찾아오지 않은 무인도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때가 되면 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유혹을 느끼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다소 생소한 핀란드와 스웨덴 사이에 있는 다도해를 무대로 하는 헤닝 만켈의 <이탈리아 구두>입니다. “추우면 외로움도 깊어진다”라고 시작하듯이 북유럽의 차가운 겨울은 견디기가 더 힘들 것 같습니다만, 무슨 사연인지 궁금증을 더합니다. 매일 오후 2시면 찾아오는 우편배달부 얀손이 유일한 방문객이자 환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보면 외과의사 같은데 무슨 외과의사인지도 모호합니다.


“예전에는 그 엄청난 재난으로 인한 절망과 분노가 너무 고통스러워 이제 그만 끝낼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삶에서 커다란 충격이었던 사건이 주인공 스스로를 이 섬에 가두게 된 것 같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와 개 한 마리, 그리고 거실방 테이블에 집을 짓기 시작한 개미들이 주인공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벗입니다.


동지도 지나고 새해가 된지 세 번째 되는 날 아침, 얼음 목욕을 하던 주인공은 멀리 얼음장 위에 서 있는 방문객을 발견합니다. 보행보조기에 의지하고 서 있는 그녀는 40년 전에 자신이 버리고 떠난 연인 하리에트 크리스티나 회른펠트였습니다. 그녀는 주인공의 이름이 프리드리크 벨린이라고 알려줍니다. 망각속으로 사라졌던 연인의 등장은 벨린의 삶에 극적인 반전을 가져다 주는 서곡입니다. 사실 세상을 여일하게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무언가 사건이 생기고 그로 인해서 변화가 있어야 삶이 재미있어지는 것 아니겠습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무료한 듯하던 벨린의 삶에 생긴 극적인 변화를 담고 있습니다.


말기 위암으로 투병 중인 그녀가 옛 애인을 찾아온 것은 40년도 넘은 옛날에 했던 약속을 지키라는 것인데, 조금은 쌩뚱맞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죽음을 앞에 두면 그런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합니다. 벨린은 하리에트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하여 섬을 나서는 것을 보면 40년 전에 그녀를 떠났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고물자동차를 달래가며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찾아갔던 숲속 작은 호수에 도착하게 되는데, 한겨울의 작은 호수에서 물속에 빠져 죽음의 공포를 맞기도 합니다. 이런 장치는 약간 억지스러운 듯한 느낌도 듭니다. 한겨울에 그것도 작은 호수에서 얼음이 깨지는 사고는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받아낸 하리에트는 이번에는 이자까지 받아내게 됩니다. 그리고 보면 벨린이 하리에트를 떠난 이유가 조금씩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리에트가 벨린을 안내한 곳은 둘 사이에 생겼던 딸 루이제가 살고 있는 캠핑카입니다. 두 사람을 닮은 것인지 루이제의 삶도 독특합니다. 아버지는 딸의 존재를, 딸은 아버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는 순간이 너무나도 극적이지 않은 것은 다소 충격이었습니다. 북유럽 사람들의 쿨함 때문인가요?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탓에 갈등의 순간이 오고, 벨린은 혼자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하리에트의 방문은 그의 삶을 뒤집은 사건을 12년 만에 마무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잘 나가는 정형외과의사였던 벨린은 암에 걸렸다고 진단된 젊은 여자수영선수 앙네스 클라르스트룀의 팔을, 그것도 멀쩡한 팔을 절단하는 수술을 한 충격으로 의사를 그만두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녀를 찾아 뒤늦은 사과를 하려는 것입니다. 그녀는 문제 소녀들을 돌보는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자신의 삶을 무너뜨린 벨린의 실수를 자신의 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쿨함이 저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섬으로 돌아온 벨린의 삶은 한 차례의 흔들림이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수순을 밟습니다. 처음에는 개가, 그리고 앙네스의 쉼터에서 만난 시마가, 그리고 늙은 고양이가 사라집니다. 마지막으로는 죽음의 시간이 닥친 하리에트가 딸과 함께 찾아와 함께 죽음을 맞게 됩니다.


정말 보기 드문 등장인물들이 엮어가는 보기 드문 이야기가, 한때 잘못 생각으로 저지른 일일지라도 책임질 일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함께 살아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 절대 함께 살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라도 말입니다. 루이제의 친구인 90세가 넘은 이탈리아 장인이 만들어준 구두는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는 길이 무엇인지를 암시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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