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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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초에 쿠바에 갔을 때 헤밍웨이의 흔적을 참 많이 보았던 것 같습니다. 쿠바사람들이 미국 정부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헤밍웨이는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헤밍웨이가 묵었던 호텔이아, 헤밍웨이가 자주 찾던 식당과 바는 물론 헤밍웨이가 살면서 집필을 하던 핀카비 히아의 저택과 그가 쿠바 친구와 함께 배를 타던 꼬히 마루에 이르기까지 아바나여행의 상당부분은 헤밍웨이의 흔적을 뒤쫓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꼬히 마루가 무대가 되는 소설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노인과 바다>는 고등학교 다닐 무렵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그때는 참 지루한 이야기다 싶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일종의 모노드라마처럼 노인 혼자서 쏟아내는 말들이 별로 와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렸던 탓이거나 아니면 생각이 모자란 탓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읽은 <노인과 바다>는 왜 퓰리처상을 받고 노벨 문학상을 받는데 기여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점이 있었습니다. 우선은 나이 듦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한 산티아고의 불굴의 정신을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오래도록 바다에서 살면서 체득한 앎이 크게 한 몫을 하게 됩니다. 자연의 가르침은 한 순간에 모두 깨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티아고가 거대한 청새치와 겨루는 과정에서 무리하거나 모자라지 않는 절묘한 낚시의 경지를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역시 오랜 경험에서 터득한 지혜를 총동원하여 이룩한 성과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항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산티아고의 물고기를 얻어먹겠다고 염치없이 덤비는 상어들에게는 단호한 면을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마지막 순간에는 뼈만 앙상한 청새치를 항구로 가져오긴 했지만 말입니다.


작품 해설을 하신 분은 산티아고는 햄릿형이라기보다는 돈키호테형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책도 읽지 않고 깊이 있는 사색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망망대해에 일엽편주를 띄워놓으면 무념무상, 자연이 가르쳐주는 것들이 절로 머릿속에 콕콕 들어박힐 것 같습니다. 즉, 그는 무엇을 읽어서 정보를 얻기보다는 바다에서 몸으로 체득한 앎으로 낚시를 해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산티아고는 기본적으로 남에게 의존하거나 구걸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려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덕목의 하나로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산티아고가 가진 자비한 마음도 귀한 것입니다. 너무 커서 배안으로 끌어들일 수 없어 배 옆에 붙여둔 청새치의 살첨이 끊임없이 덤비는 상어들에 의하여 뜯겨 나갈 때 청새치에 대하여 진심으로 미안해합니다. 너무 먼 바다에까지 나와서 청새치와 산티아고 둘 모두 망쳐버렸다고 후회합니다. 그리고는 “늙어서는 어느 누구도 혼자 있어서는 안돼”라면서 마놀린을 데리고 나오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물론 그동안 어획이 시원치 않아서 더 이상 마놀린을 데리고 배를 탈 수 없는 사정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어린 마놀린과 산티아고의 관계도 참 이상적인 듯합니다. 노인과 어린이의 조합이 얼핏보기에는 부조화처럼 보이지만, 소년은 노인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바다에서 사는 법을 전수받을 수 있고, 노인은 소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상부상조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버리지 말아야 할 전형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자신감이 넘치는 탓인 지 무엇이든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만, 책이든 인터넷이든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무엇은 오직 세상을 앞서 살아본 사람들로부터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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