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10
구스타프 마이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책세상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골렘’이라는 개념은 해리 콜린스와 트레버 핀치의 <골렘; http://blog.joins.com/yang412/9549907>과 <닥터 골렘; 

http://blog.joins.com/yang412/11385707>에서 과학 혹은 의학이라는 학문이 가질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하기 위하여 인용한 것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들은 “골렘은 유대인의 신화에 나오는 인간의 창조물이다. 진흙과 물을 섞은 뒤 마법과 주문을 가해 사람들이 만든, 인간을 닮은 자동인형이다. 골렘은 강력하며, 또 날마다 조금씩 강력해진다. 골렘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 할 일을 대신해주고 위협하는 적으로부터 보호해주지만, 반면 다루기가 힘들며 위험하다. 제대로 통제를 못 하면 골렘은 엄청난 힘을 마구 휘둘러 주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소개하면서 “과학이란 바로 골렘(Golem)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음백과사전에 따르면, 성서(시편 139:16, 형상)와 <탈무드>에 나오는 골렘의 개념은 태아 상태거나 완성되지 못한 물체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중세 무렵부터 오늘날 사용하는 골렘의 의미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16세기에는 박해받는 유대인들의 보호자로 인식된 것은 프라하의 랍비인 유다 뢰브 벤 베주렐이 만든 골렘의 전설때문이라고 합니다. 1915년에 발표된 구스타프 마이링크의 소설 <골렘 Der Golem>은 이 전설을 토대로 쓴 것으로 유명하다고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골렘>의 말미에 옮긴이가 재구성한 작가와의 인터뷰에는 작가가 차용한 골렘의 개념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골렘은 중세 밀교신앙자가 창안해낸 존재인데 프라하의 랍비 뢰브가 게토지역의 유대인을 수호할 인물로 창조했다고 했습니다. 작가는 골렘을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하였습니다. 하나는 어둡고 미로 같은 게토지역에 감도는 집단적인 심리상태를 말합니다. <골렘>에서 이렇게 표현된 부분입니다. “한 세대에 한 번씩 하나의 정신적인 전염병이 번개처럼 이 게토 지역을 훑고 지나가면서 우리가 알 수 없는 그 어떤 목적을 위해 사람들의 영혼을 습격한다. 그때 어떤 독특한 존재의 윤곽을 신기루처럼 나타나게 한다 어쩌면 이곳에 수백년을 살았을 그 존재가 이제 형태와 모습을 갖추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59쪽)”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골렘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골렘>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아타나시우스 페르나트는 배를 타고 블타바강을 건너 조그만 비탈길 위에 있는 성으로 갑니다. 그리고 성안의 대리석 건물 계단에 서 있는 또 다른 아타나시우스와 그가 사랑하는 미리암이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다른 아타나시우스는 거울 속의 나를 보듯 나와 너무나 흡사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과연 누가 골렘이고 누가 아타나시우스인지 알 수가 없는 듯합니다. 어쩌면 자아(自我)와 외물(外物)은 본디 하나라고 해석하는 장자의 호접몽(胡蝶夢)과 같은 생각일 수도 있겠습니다.


얼마 전에 프라하에 갔을 때는 단체관광이라서 게토지역에는 가보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게토지역을 보았더라면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니 실비 제르멩의 <프라하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http://blog.joins.com/yang412/14300614>에 등장하는 여인이야말로 또 다른 형태의 골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게토에서 보석세공사로 명성을 떨치는 아타나시우스와 그의 이웃 셰마야 힐렐과 고물장수 아론 바서트룸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이 복잡하게 엮여 은원관계가 만들어지고 관계가 정리되면서 대부분 등장인물들이 죽음을 맞는데,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초반 분위기는 쉽게 몰입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골렘의 존재가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았던 것도 이유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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