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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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로 처음 만난 프리모 레비를 <주기율표>로 다시 만났습니다. 유대인 화학자 프리모 데비는 등단작품인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제2차 세계대전 말에 반파시스트 유격대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졌지만, 전쟁말기에 부족한 노동력을 채워야 했던 나치의 사정으로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자가 수용소에서 겪은 일들은 다른 이들의 경우보다는 덜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기율표는 요즘 학생들은 어떻게 외우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고등학교시절 화학선생님께서는 20번까지는 외워야된다시면서 외우는 요령을 알려주셨습니다. 헤헤, 리베, 비씨노프, 네나마갈시프 크라크 케이블(H, Le, Li, Be, B, C, N, O, F, Ne, Na, Mg, Al, Si, P, S, Cl, Ar, K, Ca)이었습니다. 리베는 독일어로 ‘사랑한다’였고, 클라크 케이블은 당대 유명 배우였죠.


프로모 레비는 화학자답게 주기율표에 나오는 원소를 주제로 쓴 에세이를 <주기율표>에 담았습니다. 주기율표라고는 했지만, 아르곤에서 시작하여 탄소로 끝나는 것을 보면 주기율표의 순서대로 늘어놓은 것은 아닌 듯합니다. 마지막 탄소편의 모두에서 저자는 이 책의 성격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볼테르가 잔다르크를 찬양한 시 「오를레앙의 처녀」의 첫구절에서 따온 ‘내 목소리는 약하고 심지어 약간은 세속적이기까지 합니다.’를 인용하여 이 책이 자서전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작은 의미의 역사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개인사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자서전이 맞을 것 같다고 해야 하겠으나, 중간에 삽입된 납과 수은을 주제로 한 두 편의 에세이는 자전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선조들이 이탈리아의 토리노 인근에 있는 피에몬테에 정착하는 과정을 적고, 이어서 수소편에서는 화학실험에 관심에 관심이 많았던 10대 무렵 친구 형의 실험실에서 수소를 만들었다가 폭발사고를 내는 일화를 적었습니다.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했지만 당시의 파시스트정권이 주도하는 유대인 차별정책으로 번듯한 직장을 가지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제2차 세계대전 말 파시스트정권이 몰락한 다음에 진주한 나치에 대항하여 유격대활동을 하다가 배신자의 고발로 붙잡혀 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고생한 이야기가 잠깐 나오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간단하게 요약하고, 원소와 관련한 일화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현란하지는 않으나 현학적 비유가 잘 이해되지 않기도 합니다. 산에 매혹되었던 젊은 시절의 어느 겨울에 친구와 함께 M의 이빨이라고 하는 산에 가게 되었는데, 얼어붙은 산에서 밤을 지내고 내려온 저자는 그 날의 경험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곰고기 맛이었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그것을 더 많이 먹어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삶이 내게 선사한 모든 좋은 것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까마득한 옛날 일이긴 해도 그 고기 맛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고기 맛이란 강인함과 자유의 맛, 실수도 할 수 있는,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자유의 맛이다.(74-75쪽)”


이런 표현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은 총천연색영화였고, 그 나머지는 흑백이었다.(293쪽)” 어쩌면 가장 활동적이어야 할 시기에 수용소에서 겪은 끔찍한 경험은 그의 삶을 굴곡지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난 세달 전 포로생활에서 돌아왔지만 제대로 생활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눈으로 보고 겪었던 많은 일들이 불처럼 마음속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가깝게 느껴졌고 내가 인간이라는 것에 죄의식을 느꼈다.(222쪽)” 죽음의 수용소에서 스러져간 사람들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살아남은 사람도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도 68세가 되던 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도 가끔은 살아온 날들을 제대로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굳이 누군가에게 읽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삶의 기록, 그러니까 저자의 말대로 작은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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