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해부
로렌스 골드스톤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고래로 죽음의 원인은 아무래도 의사들의 지대한 관심사였을 것입니다. 특히 죽음의 원인을 캐는 것은 죽음을 막기 위한 치료를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병리학은 이런 배경에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환자가 죽은 다음에 원인을 밝히기 위하여 해부를 시행하는 것을 부검이라고 하는데, 근대적 의미의 병리부검은 아라비아의 의사 아벤조아르(Avenzoar; 1091-1161)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이탈리아의사 안토니오 베니비에니(Antonio Benivienni; 1443-1502)가 죽음의 원인을 찾기 위하여 해부를 시행하였다고 하며, 지오반니 모르가그니(Giovanni Morgagni; 1682-1771)가 가장 유명한 육안병리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엔나의 칼 로키탄스키(Carl Rokitansky; 1804-1878)는 생전에 2만건의 병리부검을 시행했다고 합니다.


죽음이 질병이 아닌 누군가에 의한 것이라고 하면 이제 관심은 의학의 범주를 넘어 사법의 범주로 넘어가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종 때 무원록을, 그리고 영조 때 이를 증보한 증수무원록을 실제 수사에 적용할 정도로 법의학적 바탕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서양에서는 병리부검기법을 활용하여 법의부검을 발전시켰는데, 1807년 에딘버러대학의 앤드류 던컨이 처음 시도했다고 합니다.


<죽음의 해부>는 1889년 봄 필라델피아에서 일어난 낙태시술과 마약판매 등 암흑세계와 손잡은 의사들의 불법적인 행위로 벌어지는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의사들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는 추리소설입니다. 요즈음 의사들의 윤리강령은 점점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만, 그 무렵에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동료의 불법을 의학의 발전에 기여할 재능을 꺽을 수 없다는 이유로 묻어버리는 비윤리적 행위를 고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책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의 일부는 사실이지만, 전체의 맥락은 작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등장인물과 그 인물들이 남겨놓은 업적 가운데 많은 부분들이 사실입니다. 핵심인물인 윌리엄 홀스테드는 국소마취제와 수술용 무균장갑을 개발하였고, 윌리엄 오슬러는 현대의학의 아버지라고 할 정도로 추앙을 받는 소아과의사이면서 윌리엄 홀스테드가 죽을 때까지 약물중독 상태였음을 폭로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두 실존인물의 행적을 뒤쫓아 이야기줄거리를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사실주의화가 토마스 에이킨스와 그의 작품들도 주요 등장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그림 <그로스 박사의 임상강의>는 청중들 앞에서 수술을 시연하는 외과의사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린 것으로 당시 사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19세기 미국은 유럽에 비하면 진보적이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작가에 따르면 사건보다 불과 6년 전인 1883년까지만 해도 시체를 해부하는 일이 불법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체해부를 막는 운동을 전개하는 목사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애프라임 캐롤의 법의학적 지식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습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개업하다가 필라델피아 대학병원에서 조수로 공부를 시작한 경력에 비하면 말입니다. 콜레라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는 비소중독을 꿰고 있고, 법의부검에 대한 조예도 뛰어나니 말입니다. 그것도 한밤중에 묘지에서 등불에 의지한 부검에서 말입니다. 작가적 상상력이 지나쳤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전통을 고수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외면하는 의료계의 고질적 관행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면서 얻는 소득(?)입니다. 지혈겸자가 개발되어 있음에도 ‘번개 같은 손놀림’을 자랑하기 위하여 지혈겸자 사용을 외면하는 벌레이 같은 외과의사 말입니다. 수사기법의 구태의연함도 주목거리입니다. 사건을 풀어가면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졌으면서도 정작 범인은 엉뚱한 사람을 지목하는... 어쨌거나 흥미진진한 책읽기였습니다. 특히나 의료윤리에 관한 옛 의사들의 적절치 못한 선택까지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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