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야 - 셰익스피어 희극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재남 옮김 / 해누리기획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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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발칸여행길에 두브로브니크를 찾았던 인연으로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십이야>는 대학시절 잠시 활동했던 연극동아리의 레퍼토리인데 제가 활동하던 무렵에는 무대에 올린 적은 없었습니다.


<십이야>와 두브로브니크가 어떻게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는가 하면, 3차 십자군전쟁에 참전했던 리차드왕이 1192년 영국으로 돌아가던 길에 아드리아해에서 폭풍을 만나 조난당했는데, 두브로브니크 성 앞에 있는 로크룸(Lokrum)섬에 좌초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인연이 셰익스피어에게까지 전해졌던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두브로브니크 여름축제 때는 성 밖에 있는 로브리예나츠요새에서 <햄릿>을 공연한다고 합니다. 인연의 실타래가 아주 질긴 듯합니다.


<십이야>는 1601년 ‘십이야’, 그러니까 크리스마스로부터 12일째인 1월 6일에 열리는 주현절 축제일 전날 밤에 엘리자베스여왕이 이탈리아의 메디치 집안에서 파견된 오시노공작을 위한 잔치의 여흥으로 올리기 위하여 집필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오시노공작이 되는 것이군요. 무대는 사자왕의 난파사건과 관련을 지어 일리리아 지방, 즉 지금의 두브로브니크 지역이 되는 것입니다. 1막2장이 시작되면 난파된 배에서 살아나 바닷가에 상륙한 비올라가 “이봐요. 여긴 어느 나라인가요?”라고 묻자 선장이 “예, 일리리어라고 하지요”라고 대답합니다.


일리리아는 지금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알바니아 등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여러 부족들이 흩어져 살다가 기원전 4세기 무렵 부족들이 통합되어 일리리아왕국이 성립되어 스코드라(지금의 알바니아의 슈코더르)에 도읍을 정하였다고 합니다. 로마제국의 침략이 이어지다가 기원전 167년 로마의 속주가 되었습니다.


<십이야>는 배가 난파하여 일리리아에 상륙한 쌍둥이 남매 비올라와 세바스티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남녀 4각 관계를 그린 희극입니다. 객지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남장으로 하고 오시노공작의 하인으로 들어간 비올라는 오시노공작의 인품에 반하여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오시노공작은 아름다운 올리비아 아가씨에게 온통 마음이 쏠려있습니다. 정작 오시노공작의 사랑을 전하는 전령으로 나선 비올라를 본 올리비아는 비올라에게 빠집니다. 이렇듯 물고 물리는 삼각관계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다가 상황을 모르는 세바스티언의 등장으로 더욱 복잡해집니다. 세바스티언을 비올라로 착각한 올리비아가 사랑을 고백하고 세바스티언 역시 그녀의 청혼이 싫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시노공작의 사랑은 올리비아가 세바스티언과의 약혼발표에 그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장면에서 비올라가 사실은 남장여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리는 설정은 아무리 희극이라고 해도 거시기한 것 같습니다. 왜냐구요? 인품있는 공작의 사랑이 지나치게 가벼운 것 아닌가 싶어서입니다. 그래도 극의 재미를 더하고 행복한 결말을 맺기 위한 설정으로 한바탕의 웃음으로 마무리되면서 공작의 가벼운 사랑도 묻히는 것 같습니다. 올리비아의 집사이기도 한, 덜 떨어진 맬볼리오를 놀리는 줄거리가 주인공들의 사랑을 돋보이게 하려는 작가적 장치로 이해됩니다.


해누리에서 내놓은 <십이야>에는 17세기의 판화와 19세기 화가들이 연극공연을 보고 그린 그림들이 넉넉하게 들어있어서 당시의 의상을 감상할 수 있는 망외의 소득이 있습니다. 그리고 억측일수도 있습니다만, 세바시티언이 탔던 배의 선장 안토니오가 일리리아의 오시노공작과 해전을 벌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 비올라와 세바스티언은 베네치아나 제노바의 귀족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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