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기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9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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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반쪼가리 자작>에 이어 이탈로 칼비노의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아직 읽지 않은 <나무 위의 남작>과 함께 <우리의 선조들>을 이루는 3부작의 하나입니다. <반쪼가리 자작>에 이어 현실과는 동떨어진 가상의 시대에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20세기 활동한 이탈로 칼비노는 당시 유행하던 네오리얼리즘 소설로는 복잡한 현실을 표현하는데 한계를 느껴 과거로 돌아가 선조들을 환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보는 방식을 택하였다고 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8-9세기에 걸쳐 프랑크왕국을 통합한 카롤루스 대제(혹은 샤를 마뉴 대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파리를 중심으로 프랑스 남부, 아프리카의 모로코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역을 무대로 합니다. 카롤루스대제의 군대를 구성하는 용장들은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장수들인데 그들 가운데 특별한 사연이 있는 몇 사람이 등장합니다. 하얀 갑옷을 입은 아질울포는 육체가 없는 존재하지 않는 기사입니다. 생각해보면 존재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만, 당시 기사들이 그렇듯 위기에 처한 처녀를 구해내고 귀족에 임명된 사연을 가지고 있고, 원칙주의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하인이 되는 구르둘루만은 존재하기는 하지만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존재인 것과는 대조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슬람과의 전쟁에서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카롤루스대제를 찾아온 랭보가 있습니다. 전투에 참여하여 아버지의 원수도 갚고 입신양명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젊은이는 토리스먼공작입니다. 아질울포가 구해낸 처녀 스코틀랜드의 왕녀 소프로니아의 사생아임을 밝혀 자신의 신분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아질울포의 작위가 잘못되었음을 밝히려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벌입니다. 토리스먼으로 인하여 이야기가 급류를 타면서 과거 속에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고, 아질울포가 결국은 존재하지 않은 존재가 되고, 랭보가 그의 자리를 이어받아 존재하는 기사가 되는 것입니다.


진실을 추구하는 일은 생각 같지 않게 밋밋할 수 있기 때문에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를 복잡하게 엮기도 하는데, 그 고리는 아질울포를 사랑하는 여자기사 브라다만테입니다. 그리고 랭보가 다시 브라다만테를 사랑하고, 모자지간으로 알고 있던 소프로니아와 토리스먼은 전혀 피가 섞이지 않은 사이임이 밝혀져 결국 근친상간의 죄를 벗고 사랑을 이루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야기의 중간에 갑자기 등장하는 테오도라수녀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써내려가는 수녀는 나중에 브라다만테임이 밝혀집니다. 작가가 반전 장치를 너무 많이 설계한 것 같습니다. 결국은 아질울포와 구르둘루만, 즉 존재와 비존재의 조화를 랭보가 이루어내는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것이 작가가 보여주려는 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읽은 계기는 지난해 다녀온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롤랑의 노래의 주인공 롤랑이 등장한다고 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카롤루스 대제의 최측근 기사였던 롤랑은 <존재하지 않는 기사> 에서는 안타깝게도 조역에도 미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겨우 두 차례 등장합니다. 카롤루스대제에게 “제가 저 녀석을 흔들어놓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아질울포의 하인이 되는 구르둘루를 한번 툭 치는 역할이었고, 두 번째는 카롤루스 대제의 만찬자리에서 아골란테왕으로부터 전설의 명검 엑스칼리버 검을 얻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아질울포에게 거짓임을 추궁당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습니다. 롤랑의 노래로 유럽사람들에게는 전설적인 인물이 이 이야기에서는 조연급에도 미치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이탈리아 사람의 시각에서는 롤랑의 존재를 굳이 부각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헷갈리는 것이 카롤루스대제의 군대가 전투를 벌이는 상대는 사라센사람들이었다가 어느 순간에는 무어인이 되고 있습니다. 사라센사람들은 아라비아반도 지역에 사는 무슬림을 통칭하며, 무어인은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던 무슬림을 통칭하는 것으로 이들은 아랍계이거나 베르베르족의 후손들로 사라센사람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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