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집에 있을걸 - 떠나본 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멋진 후회
케르스틴 기어 지음, 서유리 옮김 / 예담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유행어가 있었습니다. 여행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있는 것을 보면, 고생과 그 고생을 통해서 경험하는 소중한 것들을 비교해보면 고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독일의 여류소설가 케르스틴 기어의 <그냥 집에 있을 걸>은 마치 여행에서 겪은 엄청난 고생의 기억을 담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재미로 꽉꽉 채워졌던 여행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일종의 미끼와 같은 제목이라고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집을 떠나는 두려움에 대하여 심각하게 지적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 두려움의 백미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지?’하는 것입니다. 어제만 해도 페루에 여행을 갔던 한국관광객이 폭포에서 사진을 찍다가 추락해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행을 갔다가 집에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다양하겠습니까?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테러에 희생된 여행객, 공항에 도착하던 비행기가 추락해서 승객들이 모두 사망하는 사고도 있습니다. 이런 사건사고들이 저자로 하여금 이런 걱정을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자에게는 아비오토포비아(Aviotophobia), 즉 비행공포증 같은 것이 생긴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정작 비행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비행기를 타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비행공포증이 있어서인지 해외순방길에도 기차를 타고 가는 버릇이 대를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의 비행공포증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비행공포증이 저자보다 더 한 친구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포를 감추려는 친구의 유난스러운 호들갑이 백미입니다.


<그냥 집에 있을 걸>은 특별한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저자가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여행과 관련된 재미있는 사건사고들을 모아 엮은 것으로 보입니다. 어렸을 적 여행이야기까지도 나오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비행공포증 이외에도 다양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어 여행경험이 다양하지 못하다고 고백하는 저자이지만, 늘어놓은 이야기를 보면 저보다도 훨씬 다양한 여행을 해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그냥 집 안에 편안하게 앉아 있으면 좋겠어. 겁쟁이들은 여행을 할 수 없다. 사람이 얼마나 용감하냐에 따라 그의 삶은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한다.”라는 엽서를 남편에게 보낸 것을 보면, 저자는 엄살이 심하거나 아예 기우(杞憂)라고 할 쓸데없는 걱정을 이 책의 주제로 삼은 것처럼 보입니다.


여행과 관련한 재미있거나 끔찍한 이야기들은 저자가 직접 겪은 것은 물론 저자가 어머니, 남편, 시누이 등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주어들은 이야기들까지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일상에서 일어난 일까지도 적고 있습니다. 작가들은 남이 하는 이야기를 허투루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할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들은 이야기들을 소설에서만 써먹는 것이 아니라 수필에서도 써먹을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버릇까지도 적었더라구요. 저자는 여행지에서 발견한 독특한 모습의 돌을 수집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고 합니다. 손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돌이라고 하면 귀엽게 봐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자의 몸무게에 가까운 커다란 돌덩이를 차에 실어간다고 하면 이는 거의 절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말입니다. 에필로그를 보면 한술 더 떠서 여행지에서 식물까지도 채집해오는 모양입니다. 국경을 넘어 여행할 때 반입하거나 반출하는 동식물을 통하여 무서운 전염병이 옮겨질 수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금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의식이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든 참 독특한 여행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책읽기였습니다. 역시 집을 떠나지 않고는 겪어볼 수 없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모음집입니다. 어쩌면 ‘멋진 추억일수록 틀림없는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글도 있는 것을 보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 모두 꾸며낸 이야기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역설을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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