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괄호
엘로디 뒤랑 지음, 이예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 아니 이 만화책을 읽게 된 것은 ‘괄호 쳐진 인생의 한 토막, 기억의 파편을 이어 붙여 완성하다’는 구절 때문입니다. 사라진 기억을 이어 붙인다는 이야기가 생소하면서도 이색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말하면, <내 인생의 괄호>는 뇌에 생긴 성상세포종으로 뇌전증, 그러니까 간질 대발작을 일으킨 젊은 여성이 오랜 투병생활을 거치는 동안 사라졌던 기억들을, 가족들의 도움으로 회복하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만화라는 다소 생소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만화책을 읽고 리뷰한 것이 참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구성한 엘로디 뒤랑은 파리8대학에서 조형예술을 공부하고 스트라스부르 미술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내 인생의 괄호>는 뇌전증을 앓았던 자신의 투병이야기인데, 완치에 이르기까지 몇 년 동안의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린 작가가 사라진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만화를 그려냈다고 합니다.

 

뇌전증은 과거에 간질이라고 부르던 질환입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면서 구토를 하게 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당황하기 마련인데, 본인은 어지럼증, 복통, 근육통을 느낄 수 있고, 발작이 일어나는 동안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뇌전증은 뇌신경세포가 갑자기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강력한 뇌파를 만들어내는데, 이 책의 작가처럼 뇌종양처럼 국소적인 원인으로 인한 경우에는 수술적 방법을 이용하여 제거하면 증상이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발 부위기 분명치 않거나 너무 넓어서 수술적으로 제거할 수 없는 경우에는 약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만화책의 저자처럼 수술적 접근이 어려운 경우에는 최근에 개발된 감마나이프라는 기계를 사용해서 종양을 제거하는 시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경우는 감마나이프가 상용화된 초기에 시술을 받아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완치하는 행운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치료과정에서 뇌부종이 생기는 상황이 있습니다. 종양에 부종이 곁들여지는 경우는 신체의 다른 부위에 생긴 암종이 뇌로 전이한 경우에 많고 원발성 뇌종양의 경우는 드문 편입니다. 하지만 작가의 경우는 원발성 뇌종양이었지만 감마나이프로 시술을 받은 것에 대한 반응으로 뇌수종이 생긴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작가는 감정의 기복이 유별난 편인 것 같습니다. 말풍선을 넣어 통상적인 만화에서 보는 것처럼 이야기를 이어가다가도 감정이 북받치면 한 면에 굵은 선으로 소략하게 표현하기도 하기도 하고, 상징적으로 심정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작가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때로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이해되지 않은 부분은 이야기의 시작부분에 그렸던 세 쪽 분량(8-10쪽)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180-182쪽)에서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게 된 동기를 앞에 가져왔던 것 같은데 굳이 뒤에서 반복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긴 이어지는 발작으로, 혹은 힘든 투병과정에서 주변과 격리된 삶을 살다보니 과거에 친했던 친구들과 나누었던 추억들이 전혀 기억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뇌전병은 질병의 특성상 주변에 알리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알리지 않는 경우에는 위험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문제도 있어서 참으로 어려운 질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뇌전증이 기억의 소실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고, “기억은 곧 우리의 일관성이자 이성이고 감수성이다. 심지어 우리 행동을 구성하기에, 기억 없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루이스 부뉴엘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옛날에 읽은 <만화항생제>처럼 만화가 어렵게 생각하는 의학적 사례를 쉽게 설명하는 좋은 표현방식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해주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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