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이름은 자비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대화
프란치스코 교황.안드레아 토르니엘리 지음, 국춘심 옮김 / 북라이프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연초에 남미를 여행하면서 두 차례나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그가 태어나고 사제직을 맡아하던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 곳곳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여행지 멕시코시티에 가던 날 비슷한 시간에 교황께서 멕시코를 방문하시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남미를 다녀와서 얼마 되지 않아서 이번에는 책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대담을 엮은 <신의 이름은 자비입니다>가 출간된 것입니다. 이 책은 바티칸 교황청이 공식으로 인정한 첫 번째 대담집이라고 합니다.


2013년 제266대 교황의 위에 오른 프란치스코교황의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스Jorge Mario Bergoglio)입니다. 프란치스코교황은 몇 가지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최초의 아메리카출신, 최초의 예수회 출신, 최초의 남반부 국가 출신 교황인 것입니다. 시리아출신의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전만에 비유럽권 교황이 탄생하였으며, 바오로1세 이후 35년만에 이탈리아계 교황이 즉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교황께서는 언제나 겸손하고 검소하게 생활하시며, 특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미쁘게 생각하신다고 합니다. 교황의 이러한 성품으로 2016년을 자비의 희년(Jubilee of Mercy)을 선포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희년(Year of Jubilee, 禧年)이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정해서 기념하는 특별한 해를 말하는데, 25년마다 돌아오는 정기 희년과 특별한 이유로 선포하는 특별 희년이 있습니다. 희년 기간 중에 교황이 제시한 조건을 지킨 신자들에게 죄에 대한 유한한 벌을 모두 사면받는 전대사(全大赦)가 주어진다고 합니다. 구약시대 종살이를 하던 이들이 희년에 해방되던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신의 이름은 자비입니다>는 이탈리아 출신 바티칸 전문가이며 일간지 <라 스탐파>의 기자인 안드레아 토르니엘리기자가 교황의 참회예절에서 하는 강론을 듣다가 자비의 희년을 맞아 ‘자비와 용서’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춘 질문으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드렸던 것이고, 교황께서 이를 받아들여 성사된 대담의 결과라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평소에도 자비에 무게를 둔 사역을 해오셨는데, 특히 ‘상처받은 이들이 교회의 문을 두드리기를 기다리지 않고 거리로 그들을 찾아 나서서 그들을 모아들이고 그들을 품어 안으며 그들을 돌보고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33쪽)’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비록 교황께서 이 주제와 관련하여 교회를 비유하셨는데, 야전병원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가장 심한 상처부터 치료한다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야전병원에서는 상처의 경중에 앞서 회생의 가능성을 먼저 고려한다는 것을 간과하셨던 것 같습니다. 상처가 아무리 심해도 생명를 구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치료의 순서가 넘어간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결국 구명하지 못할 환자에 매달리느라 시간을 소모하게 되면 살 수 있는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지면서 또 다른 희생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교황께서는 교회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하셨습니다. 초기 교회에서 사도들은 이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에게도 모세의 율법을 무조건적으로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저항을 이겨내야만 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교회도 편견과 엄격함을 이겨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믿음의 문턱에 선 이교도의 마음 속에 성령께서 일으킨 불을 그리스도인들이 율법학자의 심리로 꺼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율법학자들은 때로 형식에 집착하는, 위선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는 초기 기독교가 신약의 관점에서 구약을 바라보던 시각이 어느새 반대의 입장이 되어버린 셈이라는 점을 깨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용서하는 일에 결코 지치지 않으신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톨릭의 교리는 잘 모릅니다만, 프란치스코교황님이 전하는 말씀은 비교적 쉽게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자비의 희년을 맞아 초기 기독교의 정신으로 려운 사람들을 궁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