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의 라틴 여행 일기
체 게바라 / 이후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년 초에 남미여행을 다녀오면서 아르헨티나와 쿠바에서는 체 게바라에 대한 열기가 여전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삶에 대해서는 <체 게바라 평전; >을 읽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에 동참하고, 콩고와 볼리비아의 게릴라전에 참여하는 등의 행동주의적 사고가 어떤 과정을 통하여 형성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특히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이면서도 진료실을 떠나 밀림으로 가는 결단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체 게라바의 라틴 여행일기>는 그가 고난의 길을 택한 계기에 대한 윤곽을 그려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194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는데, 졸업을 1년 앞둔 1951년 10월 친구인 알베르토 그라나도를 찾아갔던 것이 계기가 되어 남아메리카를 종단하는 여행을 하기에 이른 것 같습니다. 보통의 의과대학생들이라면 결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행동으로, 꽤나 충동적인 성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체 게라바의 라틴 여행일기>는 1951년 12월부터 1952년 7월까지 8개월에 걸친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와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 두 사람의 무전여행기입니다. 알베르토가 나환자를 진료하던 병원과 그 인연들을 따라가는 때로는 신세를 지고, 때로는 무전취식도 시도하는 등 요즘 같으면 어림없는 여행입니다. <체 게라바의 라틴 여행일기>으로 월터 살레스 감독이 2004년에 만든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가 2015년에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바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1988년에 쓴 <나의 아들 체>에서 인용한 프롤로그를 보면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여행해야만 한다는 것을 그 아이는 알고 있었다(19쪽)’라고 하였지만, 막상 체가 여행을 시작할 때는 그런 거창한 생각을 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마음속에 쌓여간 생각들이 그를 변모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남미대륙을 종단하는 긴 여행을 떠난 것은 단순히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고, ‘의대와 병원, 시험 등에 잔뜩 싫증난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떻든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의과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꼭 같은 생각을 하지만, 하던 공부를 집어치우고 장기간 여행을 결정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의 여행경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북서로 방향을 잡아 칠레로 들어가 북상하여 페루를 거쳐, 티티카카호수가의 푸노를 거쳐 쿠스코를 구경하고 리마로 갔습니다. 리마를 떠나서는 콜럼비아를 거쳐 베네주엘라의 카라카스에 이르렀습니다. 두 사람의 여행경로 가운데 큰 도시는 그럭저럭 알 듯도 하지만, 작은 도시는 어디쯤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두 사람의 여로는 다양한 인연으로, 혹은 의학을 공부했다는 것을 무기로 병원을 방문하여 신세를 지거나, 민병대, 그도 안되면 막무가내로 신세를 지는 식입니다. 그 옛날 이었으니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의사처럼 환자를 진료하고 처방을 하는 모습도 얼핏 보이는데, 의사면허가 없으면서도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날 때만해도 에르네스토는 사상적인 성향은 분명치 않아 보입니다만, 추키카마타광산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공산주의자인 칠레인 노동자부부를 만난 것이 기층민의 삶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 장면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우리들의 목적 없는 방랑을 기생적인 삶으로 보며 경멸하고 있었던 것 같다.(87쪽)” 그런 노동자부부에 대하여 그는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자연스런 욕망 이상 그 무엇도 아닐 터였다.’라는 정도의 인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쿠스코와 마추픽추를 돌아본 그의 느낌은 빛나는 잉카문명을 무참하게 파괴한 스페인 정복자들에 대한 비판의식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훗날 그가 국경을 초월하여 무장투쟁에 참여하는 정신적 배경의 단초를 잠깐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24세 생일을 맞아 나환자촌에서 차려준 파티에 행한 연설의 마무리부분입니다. “우리는 멕시코에서 저 멀리 마젤란해협에 이르기까지 현저히 많은 민족사적 유사점을 가진 하나의 메스티조 민족입니다. 이제 모든 편협한 지역주의를 타팟하자는 뜻에서 저는 페루와 통합된 하나의 아메리카를 위하여 축배를 청합니다.(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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