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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평점 :
<포스트 워 1945~2005>로 널리 알려진 유럽의 근대역사가 토니 주트가 여러 매체에 기고한 장문의 서평의 <재평가; http://blog.joins.com/yang412/13741266>는 지식인과 사상, 국가와 사건들에 대한 20여개의 비평 글을 담고 있습니다. <재평가>에는 미리암 아니시모프의 <프리모 레비: 어느 낙관주의자의 비극>을 비평한 내용이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던가 봅니다. 프리모 레비의 데뷔작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게 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나치의 수용소에 관한 기록으로는 오래 전에 읽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http://blog.joins.com/yang412/5396723>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주제 사마라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http://blog.joins.com/yang412/13929327>를 읽으면서 인간이 극한상황에서 과연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 인간이 타의에 의하여 극한 상황에 몰린 대표적인 사례이며 관련된 기록이 풍부한 나치의 수용소에 관한 기록을 더 읽어보고 싶어졌던 것입니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인 인간인가>는 한계 상황에 몰린 인간은 어떤 행동양식을 보이는가에 관한 좋은 기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다른’ 가람들을 거기에 참여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우리가 자유의 몸이 되기 전부터, 그리고 그 후까지도 우리들 사이에서 다른 기본적인 욕구들과 경합을 벌일 정도로 즉각적이고 강렬한 충동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씌여졌다. 그러니까 무엇보다 먼저 내적 해방을 위해 씌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수용소에서부터 훗날을 위하여 일상을 꼼꼼하게 기록한 사람들은 적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살아남았고, 그 기록을 잃어버리지 않은 행운을 얻은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후에 이런 증언을 듣게 된 사람들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수용소에 끌려가지 않았다 뿐이지 고향에 남았던 사람들도 만만치 않은 고초를 겪었다라거나, 다 끝난 일을 가지고 어쩌자는 것이냐,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냐 등등 증언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이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생각지 못한 문제가 대두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이와는 달리 살아남았다는 것이 수치와 죄책감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존자를 바라보는 시각도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타협을 거부하고 죽은 사람들과는 달리 타협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다른 사람의 희생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등등... 결국 레비는 68세가 되던 해 태어나고 자란 집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읽은 <생존자>에서는 수용소로 끌려가면서, 혹은 수용소에서 생활하면서 인간이라면 참아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대우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기록을 읽었습니다만, 수용소마다 양상이 다양했던가 봅니다. 프리모 레비가 그려낸 아우슈비츠의 모노비츠에 있는 제3수용소의 경우는 끔찍할 정도는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나갈 수밖에 없었던 수용소의 일상을 감정을 빼고 건조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단테의 <신곡>에 비유하여 우회적으로 표현한 점이 돋보였다고 할까요?
어떻든 레비에게는 운이 따랐던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통제의 수준이 그렇게 강도 높지 않았던 것은 전쟁이 말기로 치달으면서 노동력 부족이라는 변수를 만난 것이나, 화학을 전공한 덕에 실내에서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체력의 소모가 극심하지 않았던 것, 독일군이 퇴각하기 직전에는 성홍열로 병동에 입원할 수 있었던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존자>에서도 언급되었던 점입니다만, 죽음으로서 영웅이 되던 시대는 갔습니다. 살아남는 중요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살아남는가 하는 것인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화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