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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기둥 - 고대문명의 수수께끼를 찾아서
곤도 히데오 외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 / 1997년 4월
평점 :
품절
뿌리를 찾는 일은 누구나 관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문자가 생기기 이전의 뿌리를 찾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구전해 내려오는 옛 기억들이 얼마나 정확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고, 문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면 해독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문명의 기둥>은 인류의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입니다. 지구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대 문명의 흔적들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고대 오리엔트, 미노스 미케네, 그리스, 헬레니즘, 로마, 중국, 인더스, 시칸, 마야․아스테카․잉카문명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초고대사에 속하는 아틀란티스 대륙, 무 대륙, 레무리아 대륙에 관한 이야기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들 대륙은 깊은 바다에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뒷받침할만한 자료가 충분하기 않으나, 고대의 기록 등을 바탕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대표저자 곤도 히데오 도카이대학 문학부 교수를 비롯하여 관련 분야의 전문가 열 분이 참여하였는데, 조지대학의 리앙보만교수를 제외하고는 일본의 전문가들입니다.
‘고대사는 늘 변한다. 고대사는 우리의 시계를 벗어나 있다. 새로운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지면 고대사의 판도는 하루아침에 뒤바뀔 수도 있다.’라고 옮긴이가 역자 서문에서 적은 것처럼 고대사는 역동적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리암보만교수가 기록한 황허문명에 대한 내용은 옛날 배웠던 것과는 차이가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확실한 증거가 나와도 우리는 그것을 상상력으로 부정하고 나름대로 고대사의 지도를 그려낼 힘(?)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라고 한 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플라톤이 아틀라스제국의 발상과 그 문명을 기록했다는 <크리티아스>의 내용 가운데 ‘(아틀란티스 제국은) 전시에는 6만 지구별로 징집하여 육군은 중전차 1만대, 경전차 6만대, 병사 1백만명, 해군은 군선 1천2백명, 수병은 24만명이라는 대군을 거느렸다.(25-26쪽)’라는 기록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기록할 당시의 그리스 사회의 여건을 고려하여 부풀렸다는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아틀란티스 사람들이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녔을 것이라는 영국 기록은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야지마 후미오교수는 지금은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 해독이 불가능할 것 같은 고대 문자를 해독해낸 과정도 정리하였습니다.
대륙별로 흩어져 있는 고대문명이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어떤 모습이었는지, 인접한 문명과는 어떤 교류가 있었는지 등에 관한 내용을 간략하면서도 쉽게 이해되도록 정리하고 있다는 점도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문명의 발상지를 아직 가보지 못한 까닭에 실감이 덜 하지만 중남미의 마야, 아즈텍, 잉카 문명으로 이어지는 고대 남미 문명의 경우는 최근에 다녀왔기 때문인지 관심이 더 가고 나름대로 이해도 되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생략하는 바람에 흐름이 끊어지는 아쉬움도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페루의 경우에는 잉카제국으로 통합되기 이전에도 흩어져 있던 작은 규모의 집단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 가운데 시칸, 차빈, 나스카 문명 등 일부만을 다루어진 것은 다행이면서도 다소 아쉽기도 합니다. 고리가 분명치 않던 마야, 톨칸, 아즈텍 문명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던 것도 수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남미문명에 관해서는 관련 연구가 풍부하지 않은 탓인지 소략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리앙보만교수의 중국문명에 관한 기록은 모호하던 황허문명의 실체를 아예 무너뜨리고 새로운 개념을 세우고 있습니다. 황허 유역에 문명이 들어설 수 없었던 지리적 여건을 설명하고 양사오, 룽산에서 나온 고고학적 자료를 토대로 은나라의 문화를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