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현기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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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금기시 되었던 제주 4.3사건의 이면사를 세상에 내놓아 충격을 던진 현기영작가의 산문집을 읽게 되었습니다. 제주 4·3 사건(濟州四三事件)은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무장을 한 남로당 제주도당 골수당원 350여 명이 제주도 내 12개 지서를 일제히 급습한 것을 기점으로 합니다. 남로당 중앙당과의 협의 없이 제주도당이 단독으로 저지른 사건으로 남한에서 단독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실시키로 한 5·10 총선에 반대하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의 밑바탕에는 1947년 3월 1일 삼일절 기념식이 거행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불상사가 촉매가 되어 경찰이 발포하는 사건이 있을 정도로 팽배한 좌우익의 대립이 심화되어 임계치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고 합니다. 4월 3일의 경찰서 기습사건은 정부의 토벌로 이어졌고, 군경과 남로당이 대치하는 과정에서 숱한 양민들의 희생이 뒤따랐다고 합니다.

 

지금도 시각에 따라서는 제주 4.3사건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인 것 같습니다. 현기영 작가는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진실을 토로해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물론 작품 활동 초기에는 많은 고초가 뒤따랐다고 합니다. 등단 이후 40년이 넘는 세월을 바쳐 지켜온 화두를 이제는 내려놓을 법도 하지만, 작가는 여전히 자신의 화두를 짱짱하게 지키고 있는 모습입니다. 세월의 흐름에 거스를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야속함이 진하게 배어 있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어느날 눈 떠보니 세월을 다 살아냈더라는 느낌을 작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노년은 도둑처럼 슬그머니 갑자기 온다. 인생사를 통하여 노년처럼 뜻밖의 일은 없다. 아등바등 바삐 사느라고 늙는 줄 몰랐다. 그래서 누구나 처음에는 자신의 몸속에 진행되는 늙음을 부정하고 거부하려고 한다.(11쪽)” 그러면서도 세월의 흐름에 거스를 수는 없더라는 생각을 이렇게 에둘러 적기도 합니다. “옛 말에 늙으면 흙내가 고소해진다는 말이 있다. 늙어 흙에 묻힐 때가 머지않았다는 뜻인데, 죽음을 두려움이나 슬픔이 아니라, ‘고소한 흙내’로서 흔연히 받아들였던 우리 선인들의 넉넉한 풍류가 가슴을 친다.(195쪽)” 그러니까 작가는 여전히 미진한 무엇을 가슴에 담고 있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순이 삼촌>을 읽은 사람들 가운데 ‘동족에 의한 학살, 그런 이야기를 까발리는 일은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분들은 ‘좌익도 우익도 자기 마음에 안들면 마구잡이로 죽여버리는, 완전히 미쳐버린 세상이었다’라고 회고하는 것을 보면,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에 좌우익 어느 쪽도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끔찍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그 과정을 소상하게 밝혀두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먼 뿌리를 제주에 두고 있는 터라,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2000년 1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사건을 재조명하고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을 기리는 기념사업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옥석구분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양민을 학살하는데 깊숙하게 간여했던 사람들이 희생자로 버젓이 탈바꿈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제주 출신으로 오랜 세월을 교단에서 보낸 작가적 경험을 녹여낸 제주 특유의 분위기를 손에 잡힐 듯 그려내고 있는 것도 작가가 붙들고 있는 화두 말고도 눈길을 끌었다고 말씀드립니다. 제주 방언으로 닭을 ‘독’이라고 부르는데, 제주방언으로 ‘독새기’는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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