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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를 바꾼 짐머만의 전보
바바라 터크먼 지음, 김인성 옮김 / 평민사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제1차 세계대전은 아시아와 아메리카대륙의 식민지경영으로 부를 쌓아가던 유럽제국들의 세력경쟁이 임계점에 도달하면서 예정된 파국이었을 것입니다. 그 발단은 세르비아계 청년이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제국의 페르디난트 황태자를 암살한 사건이었는데, 역사적 사건은 우연의 연속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암살의 위기를 피할 수도 있었다고도 합니다. 황태자의 암살로 오스트리아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는 것으로 전쟁이 시작되었지만, 대영제국,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러시아제국, 오스만제국은 물론 불가리아, 이탈리아, 프랑스는 물론 아시아의 일본제국까지도 참전하였고, 미국은 전쟁이 후반에 이를 때까지 중립을 지키면서 연합국에 전쟁물자를 제공하는 역할에 머물면서 연합국과 동맹국 사이에 평화협상을 중재하는 입장을 견지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미국이 연합국에 가담하여 전쟁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독일 외상 짐머만이 멕시코주재 독일공사에게 보낸 한통의 비밀전문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2월 1일부터 무제한 잠수함 공격을 시작하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계속 중립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멕시코에게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동맹을 제의한다: 함께 전쟁 수행, 함께 평화 체결, 넉넉한 재정 지원, 멕시코가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에서 잃었던 영토를 회복하겠다는 점 양해. 세부 협상은 공사가 알아서 할 것. 공사는 미국과 전쟁 발발이 확실해지는 순간 [멕시코] 대통령에게 위 사실을 극비로 알라고 대통령 재량으로 일본에게 즉각 지지를 요구하며 동시에 우리와 일본 사이를 중재하도록 제안할 것. 우리의 잠수함 무제한 작전으로 이제 몇 달 안에 영국이 강화를 맺도록 할 거라는 사실을 대통령에게 주지시킬 것. 회신 바람. 짐머만(217쪽)”
그러니까 독일은 미국이 연합국으로 참전하면 전쟁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참전을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연합군에 제공되는 군수물자를 차단하기 위한 양수겹장으로 미국 내 거주하는 독일인들이 봉기를 일으키고, 멕시코가 미국을 공격하여 전선이 생기도록 하는 성동격서의 전략을 구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짐머만의 비밀전문은 연합국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고, 이 가로채 미국 정부에 전달되고, U보트의 공격을 받고 침몰한 영국의 배에 탔던 많은 미국인들이 죽는 사건을 계기로 전문이 신문에 공개되면서 미국내 여론도 참전으로 기울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공개된 비밀문서와 관련된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짐머만의 전문이 제1차 세계대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추적하였습니다. <짐머만의 전문>의 2장부터 8장까지는 전문이 보내지기 전에, 독일이 전문을 발송하고 영국이 전문을 가로채기 직전까지, 1차 대전의 발발을 둘러싸고 세계 열강들의 사정과 관계, 역사적 배경을 소개합니다. 여기에는 신생국가 미국이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멕시코와 충돌을 빚으면서 쌓인 필연적 갈등과 서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일본제국의 야욕이 곁들여지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옮긴이는 역자서문에서 저자의 <중국에서의 스틸웰장군과 미국의 경험; Stilwell and the American Experience in China>에서 인용한 ‘역사는 잘못된 계산의 나열이다(History is the unfolding of miscalculations.)’라는 구절을 글 제목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대통령 윌슨이 연합군을 지원하면서도 동맹국과 연합국간의 평화협상을 주선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나, 미국의 참전을 저지하기 위한 독일의 빌헬름황제의 꼼수들이 모두 역지사지하지 못하고 상황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더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짐머만의 전보>를 읽다보면 20세기 초의 정보전도 참 대단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당시 이미 유럽 열강들은 아시아, 특히 일본을 내심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일본은 아시아를 넘어 대륙과 대양을 넘겨보고 있었다는 것도 말입니다. 제국주의적 사고로 헛된 꿈을 꾸고 있었던 셈입니다. 지금도 그런 망상을 꿈꾸고 있는 일본사람은 없는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