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진수 - 맛의 사계를 요리하다
단 카즈오 지음, 심정명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달도 차면 기운다고 하는데, 소위 쿡방의 위세는 여전히 기세등등한 것 같습니다. 역시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은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기본 적인 세 가지 요소라고 하는 의식주 가운데 으뜸인 것 같습니다. 쿡방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요리의 세계에 빠져드는 분들이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밥하고, 라면 끓이는 것 말고는 잘하는 것이 없는 탓인지 음식 만들기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 미각이 시원치 않은 탓인지 딱이나 미식을 찾는 성향이 아닌 것도 한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든 음식 만들기에 재능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특히 일본 음식을 아시는 분들에게는 좋은 책읽기가 될 <백미진수>를 읽었습니다. 일본 문단 최고의 미식가로 알려진 단 가즈오의 에세이집입니다. 흔히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자신이 만든 음식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가즈오에게 음식만들기란 자신보다는 가까운 사람들과 같이 나누는 것을 즐기는 것을 더 좋아한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일본 문단의 내로라하는 분들과 같이 음식을 즐겼다고 적은 것을 보면, 저자로부터 음식대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일본 문단에서 명함을 내놓기기 조심스러울 것 같습니다.


<백미진수>에서 저자가 만드는 음식은 물론 퓨전인 것도 있지만, 일본의 전통음식, 특히 지역특산의 식재료로 만들어 옛날의 풍미를 내는 그런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음식도 제대로 아지 못하는 주제에 일본 전통음식은 정말 깜깜한지라 실감은 덜했지만, 그래도 음식과 관련하여 저자가 늘어놓은 사설(?)은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책의 앞부분에 보면 일본 열도의 지도가 나오고 이 책에서 언급되는 주요 지명을 표시할 정도로 일본 구석구석의 특별한 음식을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멀리는 미국, 포르투갈, 프랑스, 특히 가까운 중국의 경우는 화제에 많이 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음식은 딱 한 가지 ‘신선로’, 그것도 이름만 소개하고 있어서 의외란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혐한론자인가? 아니면 한국에는 와본 경험이 없어 한국 전통음식의 깊은 맛을 전혀 몰랐던 모양입니다. 이 분이 중국음식을 많이 아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인 1944년에 보도반의 일원으로 중국 전선을 돌아다녔기 때문인 듯합니다. 보도반원이었다면 일본군이 무슨 짓을 했는지 보고 들은 것이 있었을 터이나 생전에 그 점을 다룬 글은 별로 없었던 듯합니다. 뿐만 아니라 후난에서 광시에 이르기까지 민가에서 담가 먹던 가양주를 징발(?)해서 즐겼다는 일화를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분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흥미로운 경험이라는 생각뿐인 듯합니다. 이 책의 기획에 방점을 둔 책읽기를 함이 옳겠지만, 저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는 분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식이나 식재료, 혹은 지인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은 일화 등만 소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따라 구분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분위기에 딱 맞는 하이쿠를 곁들이고 있어, 역시 문학적 향취를 더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귀한 몸이 되었다는 아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아귀라는 생선이 그로테스크하고 물컹물켱해서 도마 위에서 칼질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가리에 갈고리를 걸어 매달아서 자른다라고 했는데, 아마도 저자가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 같습니다. 아귀라는 생선은 생물로는 살이 연하지만 일단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매달아 조금 건조시키면 살이 수축되면서 쫄깃한 식감을 더하기 마련입니다. 살이 적당히 탱탱해지면 잘라서 매운탕을 끓이거나 쪄서 초장에 찍어먹었습니다. 아귀살은 별 맛이 없기 때문에 초장과 어우러져야 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귀찜이나 아귀매운탕은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만들어주시던 것보다 맛있게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세계를 누비면서 음식을 만들고 즐긴 저자답다는 생각이 드는 한 대목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여행지에서 다양한 음식을 먹고 마시고 요리하는 일은 무척 즐겁다. ‘먹고 마시고 만드는’ 이 진정한 즐거움을 모르면 여행은 생각 외로 따분한 법이다.(130쪽)” 하지만 먹는 일이 여행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따분하기까지는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