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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속도 - 사유하는 건축학자, 여행과 인생을 생각하다
리칭즈 글.사진, 강은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11월
평점 :
지난 해 초가을에 부산에서 대구로 가면서 오랜만에 무궁화열차를 타면서 열차여행에 관한 옛 기억을 돌아보기도 했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3735545). 때로는 걷기도 하고, 자동차 혹은 비행기나 KTX와 같은 초특급열차를 이용하여 여행을 합니다. 그런데 여행을 하다보면 이동수단에 따라서 느낌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만의 건축학자 리칭즈교수는 자신의 전공분야인 건축과 여행의 속도를 묘하게 버무려 <여행의 속도에 담았습니다. 이동수단은 달라도 최종 목적지는 건축 작품이 있는 곳입니다. 건축에는 문외한인데다가 저자가 소개하는 건축물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건축물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크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동수단에 관한 저자의 생각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공감하던지 아니면 의문이 생기던지...
‘인생이라는 여행’이라는 제목을 단 프롤로그에서 ‘각기 다른 속도로 여행을 하다 보면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라는 첫구절부터 의문이 생깁니다.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무심했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았기 때문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겠지요... 저자가 인용한 ‘여행은 사고를 촉진한다. 이동 중인 비행기, 배, 기차는 우리 내면의 대화를 가장 잘 이끌어 내는 수단이다.’라고 한 알랭 드 보통의 말에 대해서도,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제 경우는 걷는 동안 생각에 빠져들 때가 많은 편입니다.
저자는 ‘여행을 생각하다’라는 주제로 이 책을 쓰면서 사고, 생명, 관찰, 그리고 이동이라는 개념에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잡은 것 같습니다. 모두에 들고 있는 네 가지 개념에 대한 간략한 요약들 가운데 역시 공감되는 부분과 의문이 드는 부분이 교차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비판적으로 이 책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본문은 이동수단의 속도에 따라서 모두 7 부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시속 250-350km의 고속열차의 도시여행, 시속 100-150km의 철로 주변의 작은 마을여행, 시속 80-100km의 도로 위의 자유여행, 시속 30-80km의 전차와 사색여행, 시속 20-30km의 여객선과 바다여행, 시속 2-4km의 작은 골목의 소박한 여행, 그리고 시속 0km의 고요한 묘지여행 등입니다. 사실 다른 6종류의 여행속도는 작가 중심의 속도임을 알겠지만, 묘지를 돌아보는 것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묘지에 묻혀 있는 사람의 속도인 0km로 나타낸 것은 주체와 객체의 불일치는 점에서 어색해보입니다.
고속열차를 이용한 여행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중년의 여행은 청춘의 그것처럼 느긋할 수 없다. 일반열차에 앉아 지루한 시간을 참아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유한한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일생의 꿈을 실현해야 한다.” 차라리 청춘보다는 노년의 여행과 비교했더라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요? 도쿄에서 아키타로 가는 고속열차여행에서의 느낌은 충분히 공감이 가는 바 있습니다. “슈퍼 고마치는 날카로운 검처럼 전방을 향해 내달렸다. 창밖 풍경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뭉개지며 모호한 잔상을 남겼다. 나는 서서히 흐릿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56-58쪽)”, 그런데 곧 이어서 작가의 시선이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체가 빨간 슈퍼 고마치는 마치 일본 설화에 나오는 요괴처럼 구불거리며 하얗게 눈 덮인 산기슭 위를 천천히 지나갔다.(59쪽)” 저자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지, 기차 위에 떠서 공간이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느낌을 얻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저자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지금은 타이페이에서 근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실린 18개의 여행 가운데 3건의 프랑스여행, 2건의 미국여행 그리고 1건의 스페인 여행이며 나머지는 모두 일본에서의 것이며, 타이완에서의 여행은 한 편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어디에도 설명이 없습니다. 저 역시 다양한 이동수단을 통한 여행의 느낌을 정리해보고 있습니다만, 어떻든 흥미로운 여행에세이임에는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