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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르네상스 ㅣ 아트 라이브러리 6
패트리샤 포르티니 브라운 지음, 김미정 옮김 / 예경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지난 가을에 다녀온 발칸반도 여행을 베네치아에서 마무리하였습니다.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19세기 발칸반도를 두고 오스만투르크와 격돌했던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하는 것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아드리아해안에 흩어져 있는 유적들 가운데 베네치아와 관련이 있는 곳이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래 전에 이탈리아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을 때 냈던 하루의 짬을 우리는 밀라노로 갔습니다만, 이번에 다녀와보니 자유투어로 베네치아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역시 그때는 밀라노로 가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 프루스트나 오르한 파묵 등의 작품을 통하여 베네치아의 모습을 조금씩 맛보다가 존 러스킨의 <베네치아의 돌>을 읽으면서 베네치아에 조금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인데, 이번에 베네치아 방문을 통하여 실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한 나절 머문 것으로 베네치아를 모두 느낄 수 있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사실은 베네치아의 뒷골목 광장에서 그들이 사는 모습을 잠시 보았고, 곤돌라를 타고 베네치아 사람들이 사는 골목(?)을 돌아보았으며, 모터보트를 타고 수로를 달리면서 수로변에 들어서 있는 오래된 집들을 보았습니다. 일정 때문에 산마르코성당이나 두칼레궁전은 바깥에서 휘~ 돌아본 것이 전부였던 터라 베네치아가 가지고 있는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아쉬웠던 터입니다.
패트리샤 포르티니 브라운의 <베네치아의 르네상스>는 그런 아쉬움을 채워주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르네상스를 말하면서 베네치아를 따로 떼어낸 것은 베네치아 사람들은 피렌체와는 다른 그들만의 가치와 의도에 따라 고대를 재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베네치아 사람들은 피렌체가 일구어낸 것들까지도 고대문명으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철학자이자 시인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1304~1374)는 베네치아를 ‘세상의 다른 곳(Mundus alter, 문두스 알테르)’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세상의 다른 곳 베네치아가 성립되어 발전한 과정을 요약하고, 베네치아의 예술이 발전해온 배경, 그리고 그들이 남긴 건축과 미술품에 대하여 설명하고, 예술이 꽃피우는데 기여한 종교와 사회의 모습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건축과 회화 그리고 조각작품의 도판을 곁들여서 르네상스 시기의 베네치아의 예술사조는 물론 당시 베네치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까지도 유추해내고 있습니다.
베네치아 이야기를 적게 되면 1480년 베네치아를 방문했다는 독일의 성직자 펠리스 파버의 말을 꼭 인용할 것입니다. 그는 “바다 한가운데에 경이로운 자태로 높다란 성들과 멋진 교회들, 그리고 화려한 저택과 궁전을 맘껏 뽐내며 떠있는, 저 유명하고 위대하며 부유하고 성스러운 도시, 지중해의 여인 베네치아(10쪽)”라고 찬탄해마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 마르코성당을 찾아갔을 때, 콘스탄티누폴리스에서 강탈해왔다는 청동으로 된 네 마리의 말을 정문 파사드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이번 여행을 베네치아에서 마무리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점이기도 합니다.
버스를 타고 베네치아의 초입에 도착한 다음에 배로 갈아타고서 산마르코광장 부근으로 이동하면서 느꼈던 모호한 감정의 정체가 다음 구절을 읽으면서 파악되는 것 같습니다. “배를 타고 베네치아에 도착할 때의 광경은, 교외를 지나 성문을 통과하고 길을 따라 점점 도심에 접근해가는 여느 도시 입성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방문객들은 처음부터 베네치아를 한 눈에 펼쳐진 일대장관으로 경험한다. 그런 다음 발길이 닿지 않은 물길을 따라 마치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맞추듯, 곧바로 도시의 심장부에 다다른다. 베네치아에서는 사물들이 시시각각 달라 보인다. 관광객들이 여기저기 시선을 돌려 빛과 대기가 뒤섞인 흐릿한 수평선으로 녹아 들어가는 아른거리는 수면을 볼 때, 그 동안 전해들은 얘기와 실제가 그렇게 확연히 달라 보이는 것은 베네치아의 실제 지형적인 위치 때문일 것이다.(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