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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등일기
김대현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10월
평점 :
놀라운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794년 전인 221년 2월 26일부터 3월 5일까지 8일에 걸쳐 고구려의 좌보 목등이 썼다는 일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썼다는 소설 <목등일기>입니다. 작가는 목등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놓기 전에 ‘아주 오래된 일기’라는 제목으로, 목등이 남긴 일기의 사본을 입수하게 된 경위를 밝히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풀어내는데 있어 스토리의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옛날부터 전해오는 전적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작가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을 피하기 위한 방책으로 써먹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돈키호테; http://blog.joins.com/yang412/13716932>에서도 세르반테스는 톨레도 잡화점거리에서 ‘아라비아의 역사가인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가 쓴 돈키호테 데 라만차의 이야기’를 우연히 사들인 덕분에 2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밝힙니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가운데 당시에는 금기였던 교회에 관한 비판적인 내용을 담으려는 장치였던 것입니다.
어찌되었던 <목등일기>의 작가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현존하는 옛날 사서에서 재미난 이야깃거리를 찾아냈을 뿐 아니라 기승전결이 탄탄한 소설로 만들어냈습니다.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던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어 결국은 잠들 시간까지 미루면서 독파하고야 말았습니다. 고구려 왕실에서도 왕권을 둘러싸고 피비린내나는 암투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왕실의 여자가 대신들과 정분이 나서 태어난 씨가 황위를 이어받았다는 설정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작가가 풀어가는 이야기의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일면서도, 설마 그럴 수가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결국 목등이 썼다는 일기에 적힌 이야기가 모두 끝난 다음, 작가의 덧붙이는 글까지 읽고 나면,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인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인지 맨 마지막 쪽에 ‘군소리’라는 제목 아래, “이 책은 물론 모두 소설이다.”라고 쓰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다룬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여전히 남는 것 같습니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 문학작품 등을 통하여 과거의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되는데, 이들 매체의 특성상 가공의 이야기임이 분명한데도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즉, 이런 매체들이 역사를 왜곡하는 경향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목등일기> 역시 고구려 초기의 역사를 왜곡하는데 기여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마음 구성에서 꼬물거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야기가 충분히 가능한 것처럼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자신의 아들을 황위에 올린 태후가 아들을 폐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었고, 어머니의 야심을 눈치챈 황제가 모후를 감시하고 결국은 주살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는 것인데, 태후가 스스로 황제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었던 것은 고구려의 건국에서부터 초기 황권을 강화하는 동안에 모후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것을 기록하여 모후가 황위에 오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이미 알고 있는 고구려사와 연관하여 이론적으로 가능한 일이겠구나 싶었던 것입니다.
그 주인공은 차를 다리는 차비에서 시작하여 황제의 여인이 되고, 막후작업을 통하여 황자를 보위에 올리는 주진아라는 대단한 여성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 궁녀신분의 그녀와 관계를 맺었던 목등이 충돌을 빚는 황제와 태후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해결사로 등장합니다.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한나라와 고구려의 역학관계도 엿볼 수 있으며, 고구려를 지키는 핵심세력이었던 조의라는 존재도 등장하기 때문에 익숙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한나라와 고구려를 둘러싸고 있던 존재들, 흉노나 말갈에 더하여 노랑머리에 파란 눈을 한 대완 사람들까지 등장합니다. 대완은 서역에 있는 나라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든 이 책에 쓰인 이야기에 너무 몰입하시면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모두 소설이니까요. 김대현 작가는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