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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교양 수업 - 내 힘으로 터득하는 진짜 인문학 (리버럴아츠)
세기 히로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공사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이후로, 모처럼 빠져들게 만드는 일본 번역서를 만났습니다. 세기 히로시의 <나를 위한 교양수업>입니다. 저자는 도쿄지방재판소와 최고재판소 등에서 30년 가까이 법관으로 근무하다가 메이지대학 법과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으로는 <절망의 재판소>가 2014년에 처음 번역, 소개되었습니다.
<나를 위한 교양수업>은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를 추구하는 책읽기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사실 [북소리] 덕분에 책을 조금 읽는다고 소문이 나면서 책읽기나 글쓰기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질문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문제는 늘 답변이 궁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체계적으로 배워서 시작하지 않은 탓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나를 위한 교양수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는 답변의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리버럴 아츠란 말이 알듯 모를듯해서 찾아보아야 했습니다. 인터넷검색을 해보면 꽤 널리 알려진 개념 같습니다만, 아무래도 제가 시야가 좁다보니 놓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리버럴 아츠란 중세 서양에서 자유시민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으로서의 7개의 지식영역으로, 문법, 논리학, 수사학(修辭學), 수학, 음악, 기하학, 천문학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저자는 요즈음 대학의 교양과정에 속하는 과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단순한 교양과목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폭넓은 기초적 학문과 교양(6쪽)”이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대학의 교양과정에서 배우는 과목들이 바로 인간의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 아닐까요?
리버럴 아츠건 교양과목이건 정작 핵심은 저자가 말하는 대로 개별과목을 통하여 얻은 지식들을 횡적으로 연결하여 ‘넓은 시야와 독자적 관점을 얻을 수 있는 것’에 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네 옛말 대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리버럴 아츠의 최종 목표는 ‘혼자 힘으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확장함으로써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게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중세 때는 자유 7과가 그랬다고 쳐도 현대에 와서는 학문의 영역이 세분화되었을 뿐 아니라 새롭게 등장한 학문들도 있어 굳이 일곱 과목을 뽑을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저자의 경우는 자연과학, 인문사회, 철학, 비평, 논픽션, 그리고 예술의 각 분야까지 들었습니다만 그 밖의 영역도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큰 틀에서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공부한 병리학에서는 총론을 다룬 다음에 각론으로 들어가 세밀하게 정리하는 체계를 좋아합니다. 저자 역시 같은 생각인 듯합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정리한 이 책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1부에서는 리버럴 아츠에 대하여 깊고 넓게 재인식하고, 그것의 의의와 효용성을 설명합니다. 2-4부에서는 자연과학, 인문사회, 철학, 논픽션, 문학, 영화, 미술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저작과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해설합니다. 물론 이 책에서 인용한 작품들은 저자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지요? 우리가 배울 점은 리버럴 아츠가 지니는 의미를 고려하여 작품선택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내용을 익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앞서도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분화된 학문의 영역은 깊이까지 더해지면서 점점 독립적이 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인접 학문의 영역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둘 여력이 없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학문 간의 벽을 허물자는 ‘통섭’의 개념이 나오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리버럴 아츠는 통섭의 개념을 뛰어넘어 ‘무장르’, ‘무경계’를 추구하는 통 큰 통합을 말하고 있습니다.
리버럴 아츠는 지적인 동시에 감각적인 방식으로 각 장르 혹은 작품의 본질을 평가하여 장르 사이에 공통점이 있는지, 전체에서 개별 작품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분야에서 제공하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지식, 정보, 감각을 종합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또는 그 관점들 사이를 이동하면서 유연하고 강인한 사고력, 상상력, 감성을 익힐 수 있다. 또한 통찰력과 직감에 따라 본질을 파악하는 사고방식도 얻을 수 있다.(24쪽)”라는 것입니다.
이 책의 핵심은 바로 2장 ‘어떻게 교양을 쌓을까’라고 보았습니다. ‘진정한 교양을 몸에 익힐 때 중요한 것은 개개의 대상을 접하는 과정에서 비평적이고 구조적인 사고방식과 사물을 파악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 저자는 책이나 작품을 읽는 여섯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각각의 방법의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대화의 정신으로 읽는다. 대상 하나하나를 심심풀이 오락으로 소비하거나, 반대로 작품에 나타난 것을 완성된 권위로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인간을 대할 때처럼 대화하면서 내적으로 깊이 느끼고 이해해야 한다.
2) 작품의 상호관계를 파악한다. 작품이 역사적, 체계적인 전체 속에서 어떻게 위치하는지를 생각하는 일이다. 더불어 그 작품이 같은 장르 속에서 어떻게 위치하는지, 또한 동시대 다른 장르의 작품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3) 작품과 작품 사이에 다리 놓기. 여러 대상에서 얻는 다양한 관점에 공통되는 보편적인 것, 보편적인 물음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대상을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작품을 접할 때 이전 작품을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그들 사이에 대화의 다리를 놓는다.
4) 다른 세계의 방법도 써보기. 어떤 사항에 대한 방법이 다른 사항에 대한 방법으로 유추적으로 이용될 수 있고, 그와 더불어 다른 사항을 이해하고 비평하는 방법도 될 수 있다. 이 또한 방법 사이에 다리놓기가 될 수 있다.
5) 자기 생각을 돌아보기. 비평적이고 구조적으로 사물을 파악하기 위하여 자신을 상대화하고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즉,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면서도 가치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6) 자기인식 능력을 키우기. 자기 생각을 돌아보기와 관련하여 자신의 관점이 성장과정이나 입장, 이해관계 등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객관적으로 의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론에 들어가서는 저자가 뽑은 자연과학, 인문사회, 철학, 논픽션, 문학, 영화, 미술 등의 분야를 크게 3개의 영역으로 묶었습니다. 2부에서는 자연과학을, 3부에서는 철학, 인문사회, 논픽션을, 그리고 4부에서는 문학, 영화, 미술 등을 묶어서 예술로 구분한 것입니다. 각 부의 처음과 끝에는 각각 개괄과 요약을 붙이고 있습니다.
자연과학은 세부분야가 광범위한 탓인지 독립적으로 구성하였는데, 여기에는 생물학, 뇌신경과학, 정신의학, 천문학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로 머리말을 시작할 정도로 저자는 연역법적 사고보다는 귀납법적 사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저자는 자연과학의 바탕이 되고 있는 근거중심주의를 리버럴 아츠 역시 지켜야 한다고 보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생물학의 영역을 논하면서 저자는 콘라드 로렌츠,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에드워드 윌슨, 라이얼 왓슨 등의 이론을 골랐습니다. 다섯 사람의 이론을 보면 앞서 소개한 여섯 가지 책읽는 방법을 적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물행동학을 인간의 행동으로 유추한 콘라드 로렌츠의 이론의 제한점을 소개하고, 이어서 유전자 이기주의를 주장한 리처드 도킨스와 진화는 우연의 산물이라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이견을 소개하고, 사회생물학을 바탕으로 중용적 입장을 세운 에드워드 윌슨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유전자가 지시하는 생물학적 관점에서의 악을 논한 라이얼 왓슨을 인용한 것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다른 점, 즉 윤리적인 방향으로 선택의 자유를 실현해나가야 한다는 왓슨의 주장이 주목할 만하다고 본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뇌과학과 정신의학은 아직도 미지의 장이 많은 영역이라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저는 오히려 ‘그 밖의 이야기’로 퉁쳐버린 영역들, 즉 자연과학의 총론에 해당하는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 관한 이야기나 우주의 시원에 관한 다양한 이론이 너무 짧게 요약되어버린 것이 아쉽게 생각됩니다. 2부를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인간과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다루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인간보다 우선해야 할 세계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소략하게 정리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3부에서 다룬 철학, 인문사회, 논픽션 역시 하나로 묶기에는 너무 방대한 영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저작들을 통해 우리는 사물을 비평적이고 구조적으로 바라보고 파악하게 되어, 새로운 발상과 인식을 펼치고 사고방식의 틀을 깰 수 있게 될 것(120쪽)’이라고 총론적으로 요약하였습니다. 특히 고전으로 남을 만한 인문사회과학 영역의 책에서 우리는 ‘좁은 학문의 영역을 초월하는 새롭고 참신한 발상이 담겨 있고, 다른 여러 학문과 관련되어 있으며, 수사법을 비롯한 문장술이 뛰어나다는 것’ 등을 배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3부를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이 영역은 대단히 넓을 뿐 아니라 각각의 저작 내용이나 그 가치관과 세계관도 천차만별이므로 정리된 하나의 견해로 묶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저자가 이 책에서 인용한 철학, 인문사회, 논픽션의 주제를 좁히는 대신 깊이를 더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 대한 논픽션 부문에서는 엠마누엘 토드의 <제국의 몰락>, 찰머스 존슨의 <블로우백>,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와 그 불만> 그리고 노엄 촘스키의 <노엄 촘스키의 미디어 컨트롤>을 인용하여 다양한 시각을 대비시킨 반면, 자서전 부문에서는 프리모 레비의 저서들 가운데 <이것이 인간인가>, <휴전> 그리고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골라 깊이를 더하고 있는 점이 돋보였습니다.
4부에서는 문학, 영화, 음악, 그리고 넓은 의미의 미술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술 영역도 장르의 경계를 두지 않는 발상으로 각각의 작품을 즐기면서 ‘대화하고 배우는 자세’로 접근할 것을 주문합니다. 다만 “그때그때 재미있으면 된다는 ‘소비의 관점’으로 읽는다면 작품이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예술 분야에서 마니아적 성향으로 특정 장르만을 수용하는 것은 골동품을 수집하듯 독특한 즐거움은 얻을 수 있으나, 시야가 좁아져 전체를 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예술 영역은 작품이나 창작자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분야이기 때문에 다양성을 가지고 있지만, 리버럴 아츠의 시각으로 본다면 깊이와 강도, 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작품이 주는 정보와 감각 그리고 거기서 얻는 인상이 깊고 강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문학에서는 도스토엡스키, 톨스토이, 허먼 멜빌, 마르셀 푸르스트, 카프카, 카뮈 등 여섯 명의 고전 작가를 인용하여 분석하였습니다. 문학의 한 장르로서 SF를 별도의 장으로 독립시켜 논한 것은 과학과 문학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는 점에 무게를 둔 것 같습니다. 나아가 사색과 문명비평서로서의 기능을 하는 SF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SF물에는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탓인지 저자가 추천하는 책들이 대부분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기회가 되는대로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와 음악은 원론적인 이야기에 그쳤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역이 광범위한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거나 예술은 확실한 리얼리티를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과 세계의 의미를 밝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특히 즐거움이라는 요소가 있어 배우기가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