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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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야 새야 파랑새야’로 시작되는 노래는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하던 녹두장군 전봉준의 거사실패를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왕조시절, 무지렁이 백성들은 무슨 짓을 해도 꼼짝 못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지배층에 팽배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고,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옛말처럼 순박한 것 같은 백성들도 궁지에 몰리면 수를 내게 된다는 것을 동학농민운동에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이 극에 달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농민들이 민란을 일으킨 것이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봉기가 전개되고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5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이광제의 장편소설 <나라 없는 나라>는 동학농민운동에 관한 다양한 사료들을 바탕으로 하고, 읽는 맛을 더하기 위한 약간의 픽션이 가미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읽히면서도 봉기 전후의 긴박한 상황에는 호흡이 거칠어지는 느낌이 절로 드는 실감나는 책읽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담대한 사내라고 하더라도 대사를 앞두고는 심리적 갈등이 많았을 터이다. 작가가나라 없는 나라>를 통하여 묘사하는 전봉준 개인의 심리적 고뇌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기에 더 몰입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거사를 일으키기 전에 임오군란의 실패로 권력의 뒤안길로 물러나 있던 대원군과 전봉준이 만나 교감하는 장면이나, 동학농민운동을 빌미로 하여 일본을 끌어들여 갑오경장 때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젊은 개혁파들의 행보가 과연 무엇을 지향하였는지 다시 새겨보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개혁도 나라가 있는 다음이어야 할 터인데, 그들은 근대화된 일본에 매몰되어 일본의 시커먼 속셈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동학군 역시 청국과 일본이라는 외국세력들이 반도에 밀고 들어오는 빌미를 제공한 것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20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던 1894년 무렵이라면 프랑스혁명의 영향을 받아 시민계급들의 고조된 인식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졌을 터입니다. 급박하게 변하는 세상의 움직임에 조선의 지배계층만이 눈을 닫고 있었으니 나라를 빼앗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고 있었던 셈입니다. 백성들까지도 누가 도둑인지 알고 있는 마당에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이 기댈 언덕을 찾아 우왕좌왕한 셈입니다.

 

과연 동학농민군은 대원위대감에게서 희망을 읽었던 것일까요? 그렇다면 상황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보다 긴밀한 접촉이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청국의 파병에 따라 서울에 들어온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대원군을 허수아비로 세워 새로운 정권을 수립한 상황에 따라 동학군이 다시 세를 규합하여 서울로 향하는 과정이 보다 선명하게 그려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첫 대면에서 ‘나라의 명운이 그대들의 손에 달렸음을 명심하라. 조선의 마지막 기회니라(25쪽)’라며 기대를 품었던 대원군이었다면 전봉준과의 접촉을 보다 긴밀하고 은밀하게 가져갔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라 없는 나라>에서는 동학군을 이끄는 무리들의 최종 목표가 중앙권력을 나누는데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거병을 하면서 전봉준이 내세운 바는 탐관오리의 숙청과 보국안민에 있다고 밝혔던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감추어진 진실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기는 합니다.

 

일본군이 뒤를 받쳐주는 관군에 밀려 결국은 패퇴를 거듭하는 동학군의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면서 정보와 지리에서의 이점을 살리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마무리를 싸움터로 떠난 정인의 생사를 뒤쫓는 두 여인의 모습을 그린 것도 아쉬운 점의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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