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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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스페인을 여행하기에 앞서 <돈키호테1; http://blog.joins.com/yang412/13716932>을 미리 읽었지만, 돈키호테가 숭모하는 여인 알돈사 로렌조, 즉 둘시네아 공주가 등장하는 장면이 없어 묘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행 중에 가이드가 소개하는 뮤지컬 <돈키호테>에는 둘시네아 공주가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돈키호테2>를 읽어 확인해볼 필요가 생겼습니다.

 

1605년 세르반테스가 발표한 「돈키호테(1편)」는 같은 해에 6판까지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세르반테스는 판권을 출판사에 양도하는 바람에 경제적인 이득은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세르반테스가 바로 2편을 내놓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1614년에 타라고나에서 누군가 ‘알론소 페르난데스 아베야네다’라는 필명으로 <돈키호테> 2편를 출판하자 이를 참지 못한 세르반테스가 67세의 고령을 무릅쓰고 2편을 써냈다고 합니다.

 

제1편은 라만차 지방의 시골양반인 알론시 키하노가 기사소설을 지나치게 탐독한 나머지, 스스로 악을 물리치며 약한 자를 보호하는 편력기사로 활약해 보겠다며 위해 마을을 떠나 좌충우돌하는 이야기입니다. 1편을 읽고 돈키호테는 정신 나간 괴짜가 맞다고 했더니 속에 담긴 의미를 다시 새겨보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사실 <돈키호테>가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도 꾸준하게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주요 등장인물인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각각이면서도 하나가 되어야 하는, 즉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성격이 조화를 이루는 삶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할 최종의 가치라는 점을 설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소설을 분석적으로 읽는 고수들이 내놓은 개념일 것이고, 저와 같은 속물들은 그저 읽히는 대로 느끼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제2편은 돈키호테의 세 번째 출정으로 시작되어 되는데, 기사대회에 나가서 이름을 날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돈키호테는 전편을 통하여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 가는 곳마다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넘칩니다. 그들은 돈키호테를 놀려보려 즐거움을 얻으려는 세속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를 걱정하는 마을 사람들은 돈키호테의 출정을 방해하는데, 특히 같은 마을의 학사 삼손 카라스코는 ‘거울의 기사’로 변장하고 돈키호테와 대결을 펼칩니다. 처음에는 돈키호테에게 패하지만 결국 바르셀로나에서는 돈키호테를 굴복시키고 마을로 돌려보내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온 돈키호테는 평범한 목부로 살려고 결심하지만 병이 들고, 결국 제정신을 회복하여 기사소설을 전부 태워버리라는 말을 남기고는 숨을 거둡니다. 주인공이 죽는다는 것은 3부의 가능성을 없애는 셈입니다.

 

제2편에서는 산초 판사가 영주가 되어 뛰어난 관리능력을 보여주는 장면도 나옵니다. 결국 앞서 말씀드린 현실과 이상주의가 대립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합일점을 찾아낸다는 의미를 감추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편보다 나은 속편이 없다는 것처럼 삽입된 액자소설들이 탄탄하게 구성된 1편과는 달리, 2편은 마치 쪽대본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드라마에서 것처럼 사건이 연속적으로 나열되는 단순한 구성이라는 점이 실망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2편의 주인공은 돈키호테가 아니라 산초 판사가 주인공인 듯하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돈키호테>에서 궁금했던 둘시네아공주는 공식적으로는 등장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돈키호테가 산초와 같이 둘시네아공주를 만나러 가지만 산초의 농간 때문에 엘 토소보의 시골아낙네를 둘시네아공주라고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돈키호테와 둘시네아공주의 달달한 사랑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읽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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