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민족 2천년 사
쉴레이만 세이디 지음, 곽영완 옮김 / 애플미디어(곽영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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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터키의 서부지역을 도는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리스유적은 물론, 로마유적, 초기 기독교유적과 셀주크 투르크시절은 물론 오스만 투르크시절의 유적에 이르기까지 7박8일의 빡빡한 일정으로 소화하였습니다. 터키가 가지고 있는 관광자원의 극히 일부만 돌아보았을 뿐입니다. 터키의 전역에 흩어져 있는 유적들을 통하여 벌어들이는 관광수입은 GDP의 20%를 차지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투르크 족이 아나톨리아지방에 정주함으로써 차지한 선대의 유물들까지도 후손들의 먹거리가 되고 있는 셈이니 훌륭한 선조를 둔 덕을 톡톡히 보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는 까닭에 1만년 이상의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수많은 문명이 명멸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터키에서는 13개 이상의 중요한 문명과 종교의흔적을 담은 171개의 고대유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중요한 지역을 차지한 투르크 민족의 역사가 <터키 민족 2천년사>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터키와 우리나라가 형제의 나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혹자는 6.25동란 때 터키기 1만 5천명이나 되는 병력을 파견하였고, 3천여명이 사상을 당하는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라고도 말하지만, 사실은 고구려가 대륙을 경영하던 시절 투르크족의 원류에 해당하는 돌궐족과 고구려가 형제의 관계를 맺고 중국에 맞서 싸웠다는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이처첨 투르크 민족의 뿌리는 기원전 1700~1200년 무렵 알타이산맥 북서쪽에서 시작하여 동진하여 중국의 서북쪽 초원지대에서 유목생활을 하면서 중국을 침략하던 흉노족으로 연결되는데, 흉노족은 동유럽에 크게 영향을 미친 훈제국과 같은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훈제국의 동진으로 유럽에서는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날 정도로 변혁을 겪기도 했습니다. 투르크라는 이름은 위구르 지역을 차지했던 돌궐족으로부터 유래하는데, 중국이 팽창하면서 돌궐족은 서쪽으로 밀려가 결국은 아나톨리아지역으로까지 이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스만제국이 성립되기 이전에 대제국을 건설하였던 셀주크 투르크가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하였던 것은 왕위계승과정에서 형제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기전이 없었기 때문에 제국이 분할되었다가 다시 통합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국력이 낭비된 때문일 것 같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투르크 민족의 이러한 특성을 간파하고 왕위계승자를 위협하는 왕족들을 모두 살해하는 끔찍한 방식으로 왕권을 지키려는 노력을 통하여 600년에 걸쳐 대제국을 경영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궁금증은 투르크 민족이 중동지역으로 진출하기 전까지는 마니교나, 조로아스터교, 혹은 불교를 믿었는데, 9세기경 압바스 왕조의 성립 이후 빠르게 이슬람화했다는 점입니다. 사실 오스만 제국이 600년에 걸쳐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하여 동으로는 인도의 북부, 남으로는 이집트, 서쪽으로는 모로코, 북쪽으로는 오스트리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을 통치하게 된 것을 보면 무함마드가 내세운 이슬람을 확산시킨데는 투르크민족의 역할이 지대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더욱 궁금해지는 것은 투르크족이 서진해오기 이전에 이 지역에 자리 잡고 살던 민족들은 누구였으며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시대에는 지금의 터기에 해당하는 소아시아출신들이 명성을 날리기도 했고, 페르시아제국이 소아시아를 거쳐 그리스와 충돌하였는데, 그렇다면 페르시아사람들도 아나톨리아 지방에 거주했을 것으로 보이고, 로마시대에는 가나안 지역에서 살던 유대인들이 아나톨리아지역으로 흩어져 살았던 유적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의 터키 땅에는 정말 수많은 민족들이 모여들었다가 흩어지기를 거듭했던 모양입니다. <터키 민족 2천년 사>가 투르크 민족의 역사라고 한다면 아나톨리아지방을 통치했던 사람들의 역사와 그들이 남긴 유물들을 정리해보는 것도 좋은 역사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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