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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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으면서 지니가 ‘뿅’하고 나타나고, 양탄자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런 세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판타지물이 인기몰이를 하는 것을 보면 환상세계를 동경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저승사자와 내기를 한 사람들의 이야기 <에프라시압 이야기; >를 쓴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의 첫 소설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를 읽었습니다. 17세기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모험소설이라고 해서 관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뷘야민이라는 젊은이인데, 주인공이 비교적 늦게 등장하기 때문에 엉뚱한 인물이 주인공인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1681년의 어느 날 콘스탄티노플 뵌야민의 외종조부 아랍 이흐산의 전함이 할리치만으로 들어오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포탄과 총탄에 망신창이가 되어 힘겹게 항해해온 전함은 조선소 부두에 접근하려는 찰나 용골이 바다 밑바닥에 닿아 좌초하고 맙니다. 마치 오스만 투르크의 쇠퇴를 암시하듯 말입니다. 오스만 투르크는 슐레이만1세(1520-1566년)가 통치하던 시기가 황금기였다.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 헝가리를 빼앗고, 트리폴리를 병합했으며, 남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렀고, 동부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슐레이만1세에 이어 술탄에 오른 무라드3세 통치시기에도 카프카스를 점령하고, 이란으로부터 아제르바이잔을 빼앗는 등 영토를 넓혔지만, 오스만 투르크는 쇠퇴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는 유럽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민족국가들이 오스만을 몰아내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던 시기였습니다.

 

외종조부 아랍 이흐산이 귀국한 뒤에 뷘야민은 아버지 우준 이흐산 에펜디가 건네주는 세계지도를 들고 모험을 떠납니다. 우준 이흐산 에펜디는 꿈을 통하여 세계를 발견하려고 했는데, 이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들은 세상에 직접 부딪혀보라고 권한 것입니다. 뷘야민이 죽어서 매장됐다가 살아났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땅굴 부대장 와르다페트를 따라나선 뷘야민은 소피아 공격에 참가합니다. 공격은 지상과 지하로 나뉘어 진행되었지만, 핵심 작전은 땅굴을 파서 성안으로 잠입한 다음 붙잡혀 있는 첩자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엮여 복잡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주제는 오스만 제국을 움직인 핵심세력은 세상으로부터 수집하는 정보를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는 정보담당부서가 결국은 술탄의 위세보다도 더 커지더라는 점과, 당시 이스탄불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 같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술탄에게 정보의 중요성을 일깨운 자가 프랑스의 첩자였다는 것입니다. 17세기 후반 프랑스는 태양왕 루이14세가 통치하던 유럽의 강자였습니다. 하지만 오스만 투르크는 이미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는데, 정보팀이 허술할 리가 없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뷘야민이 땅굴을 파고 들어가 소피아에서 구하려했던 첩자로부터 건네받은 동전은 자신은 물론 아버지까지 화가 미쳐 가족이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를 찾아나선 뷘야민이 결국은 정보기관의 수장 에브레헤를 만나게 되고, 정보기관에서 일하게 되지만, 곁가지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고 줄기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듯 하여 핵심이 손에 잡히지 않는 듯합니다. 지나치게 환상적 요소를 뒤쫓다 보니 정작 파악해야 할 핵심요소를 놓친 책읽기가 되고 말았던 것 같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작가는 우준 이흐산 에펜디가 뷘야민에게 남긴 편지내용을 공개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와 장자의 호접몽을 서로 엮어 존재의 의미를 새기고 있습니다만 이야기가 여기에 이르기까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느낌이어서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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