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눈뜨게 한 삶
김성찬 / 책만드는집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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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 진료를 전공하신 선생님 가운데 자신도 암으로 죽음을 맞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급성심근경색증이나 뇌졸중과 같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면 죽음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게 될 것을 두려워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다 같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 세상을 떠나신 장인어른께서는 말기암으로 진단을 받으시고도 거의 3년 가까이 투병을 해오셨습니다. 그 가운데 적어도 2년 이상은 비교적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셨는데, 3년째 들어 체력이 떨어지면서 생긴 폐렴을 극복하지 못하신 것입니다. 3년 가까운 시간을 버텨오셨다면 주변을 잘 정리하셨을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돌아가신 다음에 보니 그렇지 않은 면도 있고, 또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조금 더 사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곤 해서 역시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처음 암에 걸리셨다는 사실을 알린 것도 저이고 보면 암치료는 씩씩하게 잘 받아오셨을 뿐 아니라 돌아가시기 전에는 대세도 받으시고,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만나보셨다고 해서 나름대로는 행복한 죽음을 맞으셨을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다만 오늘 읽은 <죽음이 눈뜨게 한 삶>을 진즉 권해드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말기암환자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으로는 거의 정답에 가깝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눈뜨게 한 삶>은 저와 갑장인 저자가 2006년 8월 말기대장암으로 진단을 받고 힘겹게 투병을 하면서 체감한 투병경험을 진솔하게 담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분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제목들을 보면 암과의 싸움도 결국은 스스로를 어떻게 다스리는가 하는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마무리를 위한 시작, 죽는 연습, 지금 이 순간에 살기, 밝은 마음으로 살기, 느린 마음 갖기, 죽은 것처럼 살기, ‘나’에게서 벗어나기, 좋은 말 하기, 명상하기, 사랑이 으뜸, 끊임없이 수행하기, 감사하는 마음 갖기, 종교적인 삶 등 투병과정에서 느낀 점을 28개의 화두로 나누어 정리하고 있는데, 모든 내용이 마음에 절절하게 와 닿는 내용들입니다. 그 내용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람은 항상 죽는 연습을 하여 내일 당장 죽더라도 아무런 여한 없이 죽을 수 있어야 한다.(25쪽)’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죽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죽는 연습은 밝고 평온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삶에 대한 집착이나 미련과 근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려운 환경에서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일찍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야간에 법대과정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얼마 전까지와는 달리 합격자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저자가 살아온 길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연수원을 거쳐 검사로 재직하면서도 다양한 도시를 돌면서 일이 우선이던 세월을 살아냈던 것입니다. 힘든 세월을 살아온 끝에 찾아온 불청객이 암이었으니 왠만한 사람이라면 ‘왜 내가 이런 불행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불만이 폭발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내 스스로를 추슬러 암과의 싸움을 시작하여 잘 버텨왔던 것 같습니다. 모두가 마음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종교를 가졌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든 종교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면들을 모아 삶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책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책읽기’와 ‘글쓰기’가 마음공부에 큰 몫을 해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책읽기는 새겨 읽으면서 글에 담은 저자의 생각을 사색하가면서 읽어야 참뜻을 제대로 헤아릴 수 있기 때문에 정독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또한 글쓰기는 명상이 곁들여지는 효과와 함께 생각한 것을 실천에 옮기는 힘을 가지게 되는 등 다양한 효과를 가지더라는 경험적인 말씀이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고요한 마음, 즉 평정심을 유지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말기암환자는 검사결과에 일희일비하거나 치료성적에 예민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면 치료효과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암질환이 치명적이던 시절에서 이제는 만성질환의 하나로 치부하는 시설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쉽지 않은 상대인 것도 사실입니다. 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나 그 가족들, 혹은 암에 걸릴 것을 두려워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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