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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결산 보고서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가장 짧은 대답
그레고어 아이젠하우어 지음, 배명자 옮김 / 책세상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이런 책은 처음 읽습니다. 대부분의 저자는 서문을 통하여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나, 책읽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을 하게 됩니다. 조금 더 친절을 베푼다면 책의 구조와 그에 따른 내용을 축약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책읽는 이를 위한 배려는 전혀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가장 짧은 대답’이라는 부제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어떻든 이 책은 저자가 내놓은 열 개의 질문에 대하여 저자 나름대로의 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열 개의 질문이 가장 중요한가 하는 문제는 미루어두더라도, 가장 짧은 대답은 아니지 싶습니다.
저자인 그레고어 아이젠하우어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철학자이자 작가로 소설과 에세이 등을 쓰고 있는데, 이 책의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력은 특이하게도 추모기사 작가라는 점입니다. 저자는 지난 13년 동안 유명인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추모기사를 베를린 유수의 타게스 슈피겔지에 게재해왔는데, 무려 240편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저자의 친구이자 신문사 대표 다피트의 제안으로 시작한 일인데, 평범한 사람들의 추모기사를 저자에게 부탁한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유명인을 위한 추모기사야 아무나 쓸 수 있는데 굳이 너에게 부탁하겠어?(11쪽)” 스스로를 수다스러운 삼류작가라고 부르는 저자를 포함해서 여러 명의 추모기사 작가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신문사 대표의 철학이 참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A4용지 두세 장 정도가 될 4,000자 정도의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한 대표의 말대로 아무리 작가라고 하더라도 평범한 사람의 삶을 정리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책의 말미에 ‘직접 써보는 내 인생의 추도사’라는 제목으로 비어 있는 쪽을 붙여놓고 있습니다만, 언젠가는 삶을 정리하는 느낌으로 스스로의 추도사를 적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10여년 전에 돌아가신 선친께서 남기신 유고들을 정리하다 보니 사세(謝世)라는 제목으로 된 글에 살아오신 날들을 되돌아보시고, 어머님과 아들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을 남겨두셨습니다. 부지런히 유고들을 정리하여 선친의 유고집을 49제때 봉헌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저 역시 기회가 된다면 저자의 말대로 내 인생의 추도사를 써볼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모기사 전문작가(?)가 책을 읽는 이들에게 던지는 열 개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1. 스스로 생각할 것인가, 남에게 시킬 것인가? 2. 왜 사는가? 3. 나는 행복한가? 4. 나는 아름다운가? 5.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6. 무엇을 해야 하나? 7. 누구를 위해 해야 하나? 8. 신은 있는가? 9. 내 수호천사는 누구인가? 10. 죽어서도 살 수 있는가? 그런데 10개의 질문이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지 부터가 의문이 드는 것 같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각각의 질문을 제목으로 한 글을 읽다보면 저자의 말대로 가장 짧은 답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변죽을 너무 울리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글을 마무리하면서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책을 읽는 이가 만들어 보라는 식입니다. 첫 번째 장의 마지막에 던진 질문은 이렇습니다. “당신은 생의 마지막 한 시간을 누구와 보내고 싶은가?(38쪽)” 이런 종류의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은 잘 아시죠? 그렇습니다.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여 생각하여 상대를 정하고, 그 이유를 분명하게 정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저요? 글쎄요 지금부터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생각 없이 살아온 탓에 마음 속에 결정된 답은 아직 없거든요.
접어둔 곳이 많습니다. 눈에 띄는 몇 대목을 추려보면, ‘인간이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좋은 기억이다.(54쪽)’ ‘죽은 다음에는 삶이 없다(77쪽)’ ‘행복이란 없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행복해질 수 없다.(88쪽)’ 사랑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133쪽)‘ 장애인은 일반인보다 더 현명하거나 더 겸손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고약할 때가 많았다.(159쪽)’ ‘너의 죽음이 아니라 너의 삶을 슬퍼하라.(163쪽)’ ‘죽음은 불필요하게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272쪽)’
정리해보면, 죽은 뒤에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느냐 마느냐가 작가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생전의 활동이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는가 하는 문제는 작가에 국한된 것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