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개인적 기억 ㅣ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9
윤이형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6월
평점 :
윤이형의 『개인적 기억』은 ‘기억’을 주제로 한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흔히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녀가 좋은 관계를 이룬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는 남자와 가장 마지막 일만 기억하는 여자가 만났을 때도 좋은 관계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개인적 기억』에서 만난 두 남녀는 결국 헤어지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 기억』의 중심에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 http://blog.yes24.com/document/6680738, 들어 있는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가 있습니다. 푸네스는 열아홉 살이 되던 해 얼룩말에서 떨어져 의식을 잃었다가 회복되면서부터 과거의 기억이 모두 되살아났을 뿐 아니라 한번 보고 들은 것은 모두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개인적 기억』의 주인공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http://blog.joins.com/yang412/13176657』나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http://blog.joins.com/yang412/13189206』처럼 기억의 초능력을 타고 난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소재로 사용하여 기억의 의미를 새기는 중편을 만들어낸 작가의 기획이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네가 47살이 되던 해 초능력을 가진 아이를 두었다는 것만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나는 장례식을 치루고 나서 문득 헤어진 그녀가 읽어주었던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떠올리고 필사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기억하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민음사에서 나온 1판 31쇄라고 합니다. 제가 읽었던 것은 2판 1쇄였습니다. 내가 과잉기억증후군으로 진단받는 것은 열한 살이 되던 2022년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고, 당시 공식으로 인정된 과잉기억증후군 환자는 전세계적으로 51명이라고 합니다. 스물다섯 살 때는 게스트하우스 스몰월드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은유와의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은유를 만나게 되면서 생긴 고민은 그녀의 장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호감을 느끼게 된 이성들의 단점은 그녀의 고유한 모양으로 새겨진 상처로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장점의 경우는 예전에 알던 사람들의 비슷한 면모가 동의어사전을 펼쳐놓은 듯 주르르 떠오르는 바람에 눈깜박할 사이에 그녀의 장점을 특징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뛰어난 기억이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특징 없음을 사랑하면 안되나보지요?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듣게 된 은유는 자신은 어떤 관계이든 오직 마지막만 기억하는 것이 문제라고 고백합니다. 즉, 기억이 보관되지 않고 휘발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관계의 끝은 헤어짐으로 인한 상처만 기억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는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은유가 가진 기억의 문제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 http://blog.joins.com/yang412/13117429』의 주인공은 전쟁 중에 뇌를 다친 뒤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즉 기억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해마가 손상을 입은 것입니다.
어떻든 스몰월드를 재활치료의 장소로 사용하던 내가 은유를 만나고서 다시 치료를 시작하는데, 새로 먹기 시작한 약물은 기억을 사라지게 만드는 효과를 나타냅니다. “은유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녀를 사랑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모든 불필요한 과거를 망각이라는 순리에 맞기고, 본래 그것들이 가야 했던 곳으로 돌려놓고 싶었다(119쪽)”라고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치료를 시작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렇듯 마음을 썼음에도 두 사람은 왜 헤어졌을까요? 내 이름은 지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