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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
카미유 앙솜 지음, 양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아내로부터 첫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던지는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당연히 기쁘기도 하고, 안심도 되고, 뭐 이런 복잡한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는 저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아내를 지켜보면 우선은 커다란 기쁨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품에 안는다는 것은 일단 대단한 일일 것이며, 그런 대단한 일이 기다렸던 것이라면 기쁨이 더 커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대단한 일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벌어지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들지는 당해보지 않아서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아이를 가지게 된 여성이나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 남성이 각각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일을 ‘그저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이라고 슬쩍 눙치면서도 속으로는 엄청나게 많은 것을 생각했다는 여성의 속마음을 담은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을 읽다보면 세상에서 아이를 갖는 일은 결코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남녀관계가 쿨하다고 듣고 있는 프랑스에서 말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은 프랑스의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카미유 앙솜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해야 할까요? 생각지도 않은 임신과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담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세상의 엄마들은 자신이 엄마가 되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는 일이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한다.(7쪽)”라고 적은 첫머리를 읽으면서, 프랑스의 젊은 여성들은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라는 저의 생각이 잘못된 선입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남녀라면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안 순간 어떤 생각을 할까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닙니다. 요즈음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에서도 고등학교에 다니던 여자주인공이 임신을 하자 학교를 그만두고 남자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아이를 낳기에 이르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만, 결코 쉽지 않은 결심이라는 것은 누구나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역시 피임방법에 문제가 있어 생긴 임신을 두고 많은 고민을 한 끝에 아이를 낳기까지의 과정, 특히 심리적 변화를 꼼꼼하게 적어가고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엘르라는 잡지가 뽑은 인기 블로그의 하나인 ‘여자들의 카페’의 주인이 자신의 경험을 써내려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점을 암시라도 하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어떤 것은 한쪽을 넘어가기도 하지만, 어떤 것들은 불과 몇 줄에 불과하기도 합니다. 임신에서 출산까지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상황들 가운데 가장 황당한 것은 역시 아이의 아빠가 중절을 요구하며 떠나는 장면이 될 것 같습니다. 그 녀석은 여자 친구를 진정 사랑하기는 한건 지 원.... 그렇게 무책임한 남자의 아이라면 미혼모라는 굴레를 써가면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저자 역시 처음에는 임신을 중단하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낳지 말자’라고 하는 남자 친구나, 역시 자신을 생각해서 임신을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압박하는 부모님 등, 주변 사람들이 온통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자신만이 절망적 상황에 대한 유일한 판관이다(43쪽)’라는 판결문의 한 구절에 꽂혔기 때문에 임신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용감한 것인지 무모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자의 생각을 이끌어내고 공감해준 대모님이나 절친이 있어서 가능한 결심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생명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니까요.
결심은 쉽게 했을지 몰라도 아이가 금새 세상에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임신기간 동안 오만가지 생각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런 저자의 생각들을 따라 읽으면서 이 엄마가 끝까지 행복하기를 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