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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학고재신서 1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랫동안 별렀던 혜곡 최순우선생님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읽었습니다.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님은 서문에서 “한국미에 대한 난해한 철학적 의미를 지닌 글이나 학문적 업적을 쌓기 위한 논저보다는 이슬보다 영롱하고 산바람보다 신선한 글로 우리들 가슴을 언제나 한국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게 한 분이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최순우 전집> 가운데서도 누가 읽어도 이해할만한 글들을 뽑아 모았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그분의 글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보는 듯하고 그 속에 함축된 의미와 본질까지를 깨우쳐서 무릎을 탁!치고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기도 하고 마음이 흔연하고 기쁨이 충만하기도 하고 때론 감동하고 숙연하고 설레이기도 한다.’라고도 했습니다.
모두 124꼭지의 글을 뽑아서, 한국미의 총론에 해당할 ‘한국미 산책’, ‘한국민 한국의 마음’에 이어, 건축, 불상, 석탑, 금속공예, 목칠 및 민속공예, 신라토기, 청자, 분청사기, 백자, 조선 전기의 회화, 조선 후기의 회화(겸재 정선, 영조시대, 단원 김홍도, 정조시대, 혜원 신윤복) 등으로 나누었습니다.
‘건축미에 나타난 자연관’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으면서 언덕 위에 덩그러니 올라앉은 그라나다의 이슬람왕궁과 부다페스트의 헝가리왕궁과 우리나라의 왕궁이 건축철학에서부터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자연풍광 속에 집 한 채를 멋지게 세우는 뛰어난 천분을 지녔다고 저자는 보았습니다. “조그만 정자 한 채는 물론 큰 누대나 주택에 이르기까지 뒷산의 높이와 앞벌의 넓이, 그리고 거기에 알맞은 지붕의 높이와 크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인들의 형안은 상쾌하다고 할 만큼 자동적으로 이것을 잘 가늠하는 체질을 지니고 있었다.(21쪽)”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집안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즐거움에 더하여 반대로 먼 곳에서 그 집채를 바라보는 즐거움까지도 매우 대견하게 알아온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추상적인 지맥까지도 일치시킴으로 해서 유무형의 미학을 추구한 것입니다.
저도 오래 별러서 영주 부석사를 찾아 무량수전을 돌아본 적이 있습니다. 저자가 특히 무량수전에 주목한 것은 고려 중기에 세운 이 건물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이라서 뿐 아니라, 단출한 단층 건물인 무량수전이야말로 앞서 말씀드린 우리 건축의 미를 제대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기 기둥들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78쪽)”
그래서 “요사이는 집을 지으려면 대개 자연 지형을 마구 헐어내고 깎고 돋우고 해서 멋진 자연 풍광을 학대하는 일이 예사인데 과거의 한국 사람들은 결코 자연을 거역하는 무모는 최소한도로 줄이는 것을 불문율로 삼았다.(89쪽)”라면서 철학이 사라진 요즈음 우리 건축의 실태를 넌지시 꼬집기도 합니다. 삼척에 있는 죽서루에 말로 우리 건축의 철학을 잘 담고 있어 ‘한국 건축의 모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이희봉 지음, 한국건축의 모든 것 죽서루; http://blog.joins.com/yang412/13210699)
그리고 생각해보니 파리의 에펠탑 아래 펼쳐진 공간을 에워싸고 있는 나무의 가지들을 대패로 밀어낸 듯 잘라낸 모습을 보고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는데,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헤네랄리페 궁전에 이르는 길에 늘어선 사이프러스나무들이 꼭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슬람건축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원모습은 이렇다는 것입니다. “동산이 담을 넘어 들어와 후원이 되고, 후원이 담을 넘어 번져 나가면 산이 되고 만다. 담장은 자연 생긴 대로 쉬엄쉬엄 언덕을 넘어가고, 담장 안의 나무들은 담 너머로 먼 산을 바라본다.(94쪽)” 정말 멋들어진 비유가 아닌가요? 우리 정원이 그렇지만, 그 정원을 이처럼 멋들어지게 그려내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수많은 우리 예술품이 품고 있는 미학적 설명을 제대로 느껴볼 기회를 만들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책읽기를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