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벌판
응웬옥뜨 지음, 하재홍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책을 읽기 위해 여행을 한다는 이희인님은 <여행자의 독서; http://blog.joins.com/yang412/13651913>에서 베트남여행에서 읽은 두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베트남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책읽기라고 생각합니다만, 베트남에서 성장한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http://blog.joins.com/yang412/13669117>과 베트남 작가 응웬옥뜨의 <끝없는 벌판>입니다. <연인>이 근대 베트남을 지배한 사람들의 뒤틀린 삶을 그렸다면, <끝없는 벌판>은 이들의 식민지배가 남긴 베트남 사람들의 굴곡진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 베트남과 우리나라의 관계는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저항한 독립전쟁이 북부베트남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열강은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면서도 독립전쟁의 주도한 호치민의 좌파정권을 북위 17도를 경계로 하여 북쪽에 두고 남쪽에는 우파정권이 들어서도록 분할한 것입니다. 결국 북쪽이 주도한 통일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대립하는 양상으로 치닫게 되면서 서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는 형세였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북부베트남이 공산정권이 남부베트남을 통합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는 당시 미국과의 관계를 비롯한 산업발전에 필요한 자금 등 다양한 점들을 고려하여 베트남전쟁에 파병을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은 북부베트남의 집요한 공세 끝에 미군이 철수를 결정하면서 베트남은 통일을 이루게 되었고, 우리 군 역시 철수를 하면서 베트남과의 관계는 단절되었습니다. 전후 베트남이 사회적으로 안정을 되찾고 국가발전을 고려한 국제관계를 수립하게 되면서 우리나라와도 수교를 하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전쟁 중의 어두운 과거사를 덮기로 했던 것 같습니다. 베트남의 개방과 사회발전에 우리나라 역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결혼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 편입되는 베트남여성들이 늘고 있어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관계가 긴밀해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점을 본다면 베트남 사회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합니다. ‘메콩강 거친 벌판에서 피어난 감동의 성장소설’이라는 카피가 붙어 있지만 <끝없는 벌판>을 읽으면서 내내 너무 처절한 그들의 삶에 안타까움이 커지면서 결국은 주인공마저도 그 사회에 쳐진 그물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마무리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설마 이럴까 싶은 의문까지도 들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메콩강 지류들이 복잡하게 얽혀드는 들판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야만 하는 모양입니다. 쌀농사가 년간 다모작으로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농사를 지을 논이 없으면 그림의 떡에 불과한 것입니다. <끝없는 벌판>의 주인공 가족은 벌판에 오리를 방목하여 키우고 있는데 오리가 먹을 것을 찾아 거룻배로 이동하는 뜨내기 삶입니다. 가끔씩 들이닥치는 조류독감으로 키우는 오리들을 살처분해야 하는 횡액을 당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벌판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성에 대한 관념이 우리네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가족도 어느 날 어머니가 눈에 맞은 남자를 따라가 집을 나가면서 떠돌는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 주인공의 아버지 역시 오가다 만난 여자와 관계를 맺었다가 버리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이들의 삶에 도덕이라는 관념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커가는 주인공이 새로운 삶의 길을 모색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은 나락의 길로 빠져들어가도록 방치한 작가를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그 벌판에서 세 명의 어린 무법자들에게 유린당하고 마는데, 주인공은 한 차례 저항을 하는 것을 끝으로 포기하는 모습도 낯선 듯합니다.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에 답이 될 듯한 구절이 있기는 합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우리 남매는 무엇이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직접 몸으로 시도해보면서 결과를 얻었다. 그것이 앞날을 살아가기 위한 우리만의 학습방식이었다. 남녀가 몸을 섞는 일은 내가 좀 전까지 겪어보지 못했을 뿐이다. (…) 처음에는 갈기갈기 찢기듯 아프더니 그 다음엔 날개미가 허물을 벗듯 살점이 한 꺼풀 벗겨지면서 쓰라린 고통을 안겨주었다.(156쪽)”

 

끝없는 벌판

옹웬옥뜨 지음

하재홍 옮김

163쪽

2007년 9월 30일

아시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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