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살면서 나름대로 정한 원칙을 지키려 노력을 하지만 때로는 현실과 타협하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아주 드물지만 원칙을 고수하는 분들을 만나게 되면 한편으로는 고지식을 탓하면서도 원칙을 고수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합니다.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베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를 읽으면서 원칙을 고수하는 멋진 모습을 만나서 좋았고, 그러면서도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가는 모습이 더 보기 좋은 것 같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의 주인공 스크루지 영감처럼 세상과 담쌓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드물지는 않습니다. 이야기들은 대부분 주인공이 얼어붙었던 마음을 열고 사람들과 교감을 이룬다는 식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역시 더불어 사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베라는 남자>에서는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대목이 몇 가지 있습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일터에서 내몰리는 상황, 아내가 죽었을 때도 일터를 지켰던 남자가 일터를 잃자 죽음을 모색한다는 상황, 그리고 주민들마다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정해진 지침에 따라서 업무를 집행하는 공무원 등등...

 

모두 마흔 개의 에피소드에 달려있는 제목들은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오베라는...’, 그리고 ‘오베였던...’. 그렇습니다. ‘오베였던...’이라는 제목의 글들은 오베의 과거사입니다. 성장해서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그리고 아내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합니다. 그런가하면 ‘오베라는...’이라는 글은 지금의 오베가 겪는 일들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오베의 과거와 현재가 교대로 등장하며, 때로는 현재와 과거의 일이 선후가 뒤바뀌기도 해서 헷갈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집중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일까요?

 

이야기를 되돌려서 아내의 장례를 치루고 바로 출근했던 오베가 일터를 잃은 뒤에, 아내의 빈자리를 절감하면서 살아있을 이유가 없어 죽어야 하겠다고 마음먹는 과정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주변사람들에게 무언가 미심쩍은 행동을 보인다고 하는데, 오베를 둘러싼 사람들은 그런 전조증상을 깨닫지 못하면서도 우연히 오베의 죽음을 방해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어 조금은 아쉬운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충분히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점’을 저자가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조금은 불만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오베의 과거를 돌아보면 세상과 담을 쌓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온갖 세상일에 간섭하면서 살아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을 자치회장을 맡아 마을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신경을 써온 것이라든가, 공무원들의 말도 안되는 행정을 바로잡기 위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끈질기게 투쟁하여 소신을 관철시키는 모습 등이 그렇습니다. 그의 소신 가운데 ‘남을 고자질하지 않는 일’은 정말 따라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보고 들은 것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가슴에 품음으로 해서 자신이 도둑으로 몰리는 상황이 되어도 오베는 남을 고자질하는 일은 할 수 없다는 소신을 지켰던 것입니다. 이런 오베를 알아본 그의 아내 소냐 역시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읽어가면서 깨닫게 됩니다. 친구들이 그녀의 선택에 대하여 의문을 표시했을 때도,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206쪽)’ 오베가 역시 오베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아내가 되어 달라고 청혼해 줘요’라고 오베에게 말한 소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융통성이 없는 남자, 오베가 주인공인 탓인지 옮긴이도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고 원고에 충실하였던 것 같습니다. BMW로 차를 바꾼 루네를 다시는 보지 않았던 오베가 새차를 사려는 아드리안을 위하여 딜러와 협상하여 도요타를 살 수 있도록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나마 이런 조건으로 도요다 정도면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그 빌어먹을 꼬마는 현대차를 보던 중이어서, 하마터먼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422쪽)’라는 장면을 곧이곧대로 번역을 해놓은 것입니다. 만약 제가 번역을 맡았더라면 거꾸로 옮겼을 것 같습니다. ㅋ

 

각설을 하고, 읽다보면 슬그머니 웃음도 나오고, 가슴이 짠한 장면도 나와 다양한 감정을 연주하게 만드는 정말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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