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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
제프 다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존 러스킨은 <기억의 일곱 등불; http://blog.joins.com/yang412/13284036>에서 건축물의 기억에 관한 다음과 같은 설명에서 폐허에 담긴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건물의 가장 위대한 영광은 돌이나 금과 같은 재료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영광은 건물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에 달려 있고 말하고자 하는 바의 울림과 엄밀한 관찰의 깊이에 달려 있으며, 또한 찬성이나 비난이 교차하더라도 인간애의 물결로 오랫동안 씻긴 그 벽을 보며 우리가 느끼는 불가사의한 공감에 달려 있다. 오랜 시간을 견뎌온 그 증인이 인간을 마주할 때, 그리고 잠시 머물다 가는 모든 사물과 조용히 대비를 이룰 때 영광이 있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며 왕조의 탄생과 쇠퇴가 반복되고 지구의 표면과 해안의 경계가 바뀔지라도, 거기에 있는 돌은 그 고된 시간 동안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며 잊힌 시대와 다가올 시대를 서로 연결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그래서 이미 그 민족 정체성의 절반을 구현하는 힘의 크기 안에 그 영광이 있다.(240~241쪽)”
제프 다이어의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바로 폐허로 떠난 여행기라는 카피에 홀려 읽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야기는 폐허가 되어가고 있는 건물이 즐비한 로마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사실은 아테네에서 시작하는 것이 더 어울렸을 법합니다만, 그리시와 이탈리아라고 하는 사회적 배경을 고려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읽다보니 건축물이 무너져 내린 폐허보다는 폐허화되어가고 있는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로마의 유적에 서 있는 거대한 돌에서 역설적으로 생명의 기운을 느끼고, 돌 사이에 펼쳐진 고요함에서 시간의 흐름에 무심해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리비아의 렙티스 마그나에서는 수직으로 세운 것이 경외의 대상이 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궁극에 가서는 그마저도 무너져 수평적으로 된 것들이 주는 매혹에 저항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웁니다.(정말 어렵습니다.)
그리고는 뉴올리언즈, 태국, 암스테르담, 발리 등으로 여행이 이어지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여성과의 원나잇스탠드, 마약과 같은 일탈을 반복하면서 여행지에 관한 이야기는 사라지고 여행지에서의 일상이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모호하게 나열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행에 관한 내용일 것으로 기대했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망각이 이야기의 핵심이 되면서 저자의 내면에 대한 성찰을 한 겹 내보이기도 합니다. “마흔이 지나면 온 세상이 오리가 지나간 자리의 물결처럼 되는거야. 마흔이 지나면 인생은 원래 낭비하기 위해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149쪽)” 마흔을 불혹의 나이라고 했던 공자님이 들으시면 개 풀 뜯는 소리냐 하셨을 것 같습니다. 급기야는 호텔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 헤매기까지 합니다. 길을 헤매는 일은 캄보디아의 프놈펜에서 메콩강을 거슬러 시엠립으로 가는 길에 톤레삽에서 배가 좌초되는 일로 이어집니다. 그에게 있어 시엠립은 앙코르왓의 신비보다는 프놈바켕의 석양이 더 큰 의미를 남겼고, 프레룹사원에서 콜라를 파는 소녀와의 실강이기 더 기억에 남았던 모양입니다.
1999년에 방문했다는 파리의 에피소드를 읽기 시작하면서, 뉴올리언즈 여행이 1991년이었음을 상기하면서 이야기들이 여행순서와는 무관하게 저자의 기획의도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디트로이트에서 이 책의 주제가 드러나게 됩니다. 로마에서 처음 기획할 때는 고대 유적지의 폐허에 대한 글이 될 참이었는데, 그 사이에 자신이 폐허가 되고 말아 읽기나 쓰기는 물론 집붕력을 요구하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포기하고 있던 책쓰기를 디트로이트에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저야 디트로이트를 그저 운전해서 지나친 기억 밖에 남아 있지 않아 도시에 대한 구체적인 인상이 없어 그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바다의 블랙록 사막이야말로 저자에게는 모든 욕망이 충족되는 ‘구역’이었다는 것입니다.
책읽기를 마치고는 그저 어렵다는 느낌만 남은 것 같습니다. 다시 읽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불길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