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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수업 천양희 : 첫 물음 ㅣ 작가수업 1
천양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3월
평점 :
책을 열심히 읽고 리뷰를 쓰시는 분들 가운에 작가를 꿈꾸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나름대로는 열심히 읽고 리뷰를 쓰고 있기는 합니다만,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쓰기에 관한 책에 관심이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첫 물음’이라는 부제가 달린 <작가 수업 천양희>는 천양희 시인의 에세이집입니다. 시인 자신의 시작경험을 담아 시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것 같습니다. 역시 표지에 있는 “계속 써라! 뭔가 멋진 것을 찾을 때까지”라는 카피를 달아 자신이 없어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글쓰기, 특히 시작에 관한 시인의 생각을 첫 번째 “첫 물음이 내 문학의 ‘첫’이었다”, 두 번째 “계속 써라! 뭔가 멋진 것을 찾을 때까지”, 세 번째 “시는 나의 생업”의 순서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글은 ‘왜 쓰나고요?’라고 질문하고 대답을 하고서는 “첫 물음이 내 문학의 ‘첫’이었다”라고 이어 쓰고 있습니다. 글쓰기, 시작에 대한 경험을 들려주는 사이사이에 자신의 시를 인용하면서, 그 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데, 설명을 듣고 시를 음미하다 보면 다른 맛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요”라는 시의 첫 구절이 눈길을 붙들었습니다. ‘강변역이 강변에 있지 않고 / 학여울역에 여울이 없다니요?’라는 부분입니가. 강변역이 강변에 있고 학여울역 부근에 여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던가요? 저도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정말 그럴까 싶은 부분도 있습니다. “유년 시절은 존재의 우물”이라고 했다는 바슐라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유년의 기억은 퍼 내어도 퍼 내어도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샘인 것 같다’라고 하셨는데, 저에게 남은 유년의 기억은 불과 몇 자루 밖에 남지 않아서 퍼낼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인과 범인의 차이일까요? 하지만 옥의 티도 눈에 띄였습니다. 유독 옥의 티가 눈에 잘 들어오는 편이라서.... ‘기린의 등에 매달려 진드기를 빨아먹고 사는 아프리카의 노랑부리할미새처럼...’인데 노랑부리할미새는 기린과 공생 관계에 있는 것이지요. 시인께서는 마치 새가 기생하는 존재인 것처럼 적고 있습니다만, 새는 먹이를 쉽게 얻고 기린은 기생충을 제거하는 셈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시집의 리뷰에서도 적었습니다만, 제게 시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인께서는 “시를 많이 읽고 느끼고 이해하게 되면, 시가 좋아지고 시에 대한 안목이 생기게 된다.(79쪽)”라고 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시를 읽고 즐긴 것이 아니라 시를 분해하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청소년들이 시를 멀리하게 만드는, 왜곡된 시교육의 대표적 현상이라고 통절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시는 해체의 대상이 아니라 읊조려 느낌을 얻는 것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한 가지 가슴이 찔리는 느낌이 들었던 점은 ‘천 개의 곡조를 다룬 후에야 음악을 알게 되고, 천 개의 칼을 본 후에야 명검을 알게 되듯이 천 개의 시를 쓴 후에야 명시를 알게 되는 것(115쪽)’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천 개의 리뷰를 써냈음에도 여전히 좋은 리뷰를 써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내 시도 내 삶의 고통 속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시는 절실하고 진정한 내 삶의 다른 모습이다.(153쪽)”라고 하신 시인과는 달리 제가 써온 리뷰에는 고통의 알갱이가 담겨있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먼저 백 번을 읽어라’라는 제목의 글에 청나라 초기 문장가 장조의 <유몽영>에서 인용한 글을 다시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젊은 시절의 독서는 틈 사이로 달을 엿보는 것과 같고, 중년의 독서는 뜰 가운데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노년의 독서는 누각 위에서 달구경하는 것과 같다. 모두 살아온 경력의 얕고 깊음에 따라 얻는 것도 얕고 깊게 될 뿐(2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