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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의 과학 - 비정상의 시각으로 본 정상의 다른 얼굴
조던 스몰러 지음, 오공훈 옮김 / 시공사 / 2015년 2월
평점 :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는 박근혜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입니다(http://www.normal.go.kr). 박근혜대통령님께서 2013년 광복절을 맞아, “우리사회의 비정상을 바로 잡아 ‘기본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들어갈 것”을 선언한 것이 시발점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부정부패, 부조리, 불법, 편법 등의 ‘비정상’을 바로 잡아, 법과 원칙이 바로 서고, 투명하고 효율적인 국가와 사회를 만들어 사회적 자본이 축적된 ‘정상’을 구현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은 쉽게 구분이 될 것 같지만, 조금 깊이 생각해보면 모호한 구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관행이라는 인식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정상을 분명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이라는 제목의 책이 눈을 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의 조던 스몰러교수가 쓴 이 책의 원제는 <The other side of normal>입니다. ‘정상의 이면’으로 번역을 하면 평범해 보일 것 같아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우리정부의 국정 아젠다를 끌어온 것같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은 정신의학 영역의 화두가 되고 있는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정신의학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을 길가름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고 합니다.
저자는 에드거 앨런 포가 <도난당한 편지>에 적은 “너무나 주제넘고 너무나 명백하며 너무나 자명하여 마땅히 고려해야 할 사항을 그냥 모른 척 간과하고 지나가버리면, (바로 이 때문에) 지적 능력이 고통을 받게 되지”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파악하다’라는 제목의 서문을 시작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도난당한 편지>에서는 누군가의 정치적 생명이 걸린 중요한 편지를 훔친 도둑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감추었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중심 줄거리입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면서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인용입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왔지만 기술적 장애와 심리적 장애로 인하여 제약을 받아왔다고 주장합니다. 기술적 장애라 함은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기에 마땅한 도구가 없었다는 것이고, 심리적 장애라 함은 저자가 ‘도난당한 편지 효과’라고 부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너무 자명한 일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어서 쉽게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문제입니다. 저자는 ‘정상’을 정의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이라는 말을 ‘올바른’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정상이라 함은 ‘올바르다, 표준이다, 혹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저자는 18세기 프랑스 생리학자 프랑수아 요제프 빅토르 브루세가 “병적 측면은 본질적으로 정상과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은 ‘건너뛰지 않고’ 정상적인 것으로부터 병적인 것까지 두루 계속해서 지나가기 때문이다.(12쪽)”라고 정리한 정상의 의미에 공감한다는 것입니다.
서문의 말미에 이 책의 구성이 잘 요약되어 있어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우리는 ‘정상’의 정의를 고찰한 다음, 이어서 과학에서 가르치는 생물학이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또 기질과 성격의 유전학적 뿌리를 탐구한 다음(2장), 생애 초기 사람의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로 뛰어들게 될 것이다(3장). 이어지는 장에서는, 아동기와 성인기에 핵심을 이루는 정신적 기능 발달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여기에는 사회 인지와 공감(4장), 애착 및 신뢰의 생물학(5장), 성적 매력의 근원(6장), 감정과 공포는 어떻게 학습과 기억을 형성하는가(7장)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같은 내용을 쭉 따라가며, 우리는 이 분야에서 발견된 내용을 통해 이른바 정신 질환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8장에서는 우리가 공유한 인간성, 우리 삶의 유일무이한 궤적, 우리가 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의 측면에서 ‘정상의 생물학’이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16-17쪽)”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정신질환의 기준에 들어맞는 증상을 보인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 해 [북소리]에서 소개했던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http://blog.joins.com/yang412/13392396>을 기억하신다면 이 질문에 공감하실 것입니다. 정신장애를 진단하는 교본으로 사용되고 있는 정신장애진단편람 3판(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DSM-III)과 3판의 개정판(DSM-IIIR)을 정리하는 작업에 참여하였고, 정신장애진단편람 4판(DSM-IV)의 작성책임을 맡았던 듀크대학 정신의학과의 앨런 프랜시스교수는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에서, 최근 만들어진 DSM-5에서는 정신장애의 진단기준이 지나치게 완화되어 정신질환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그 이면에는 정신질환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제약회사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제가 전공하고 있는 병리학에서도 정상을 잘 이해해야 비정상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정신질환을 정의함에 있어서도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일이 중요할 것입니다. 문제는 정상이 무엇인지 밝히는 작업이야말로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저자는 먼저 정신질환을 정의하기 위하여 정상과 비정상의 정의를 내리는 일이 시간과 장소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역사적 순간이나 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서양의학이 주도해온 정신질환의 진단기준은 불안정한 마음과 고장 난 뇌와 같은 극단적인 증상만 분류하여 장애를 구성해왔지만, 이제는 정상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하여 “마음과 뇌의 기본구조는 물론, 마음과 뇌가 어떻게 맞닥뜨리는 환경과 경험을 파악하는지 이해하면, 우리는 기능 장애가 어디서 발생하며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 체험의 범위에서 나타나는지 알아낼 수 있다.(49쪽)”라고 설명합니다.
사실은 ‘정상’이라는 개념에는 프랑스 출신의 천재 수학자 아브라함 드 무아브르가 18세기에 정립한 ‘정규분포’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통계학적 기술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정규분포는 물리학적 현상, 생물학적 현상 심지어는 사회현상에 이르기까지 경우의 수가 분포되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래프에 나타내면 평균을 기준으로 하여 양쪽이 대칭을 이루는 종모양을 나타내게 됩니다. 즉, 정규분포는 평균과 분산이라는 두 개의 숫자로 정의되는 개념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를 어디에서 끊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낮과 밤의 경계선은 없다’라는 아주 재미있는 비유가 나옵니다. 흔히 우리는 밤과 낮이 분명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물어보면 분명한 기준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밝은 낮과 어두운 밤은 분명 알지만, 해가 지면서 어둠이 내리는 것은 시나브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몰이라는 현상을 참고할 수도 있겠지만, 지역적 여건에 따라서 일몰의 분명한 정의가 쉽지 않은 문제가 남습니다. 그래서 정규분포곡선에서 표준편차를 이용하여 정상의 범위를 정하는 방식을 적용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보다 많은 전문가들이 공감하는 기준을 도출해내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공감이라는 것도 시대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는 한계를 가지는 것이기는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기질, 정서반응, 성격 등에 따라 정신질환에 대한 감수성에 차이를 보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 요소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요? 한 때 인간에 관한 모든 것들이 유전자에 담겨진 유전정보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유전적 요소에 더하여 환경요소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유전정보가 뇌에 작용하여 기질을 만들어 내는 과정과 양육을 통하여 정서반응이나 성격이 완성되는 과정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총론적인 이야기는 어느 영역에서나 전문적인 경향이 있어서 이해가 쉽지 않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호한 상태에서 요약설명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 이 부분은 생략하고자 합니다. 요즈음 주목받고 있는 후성유전학의 개념을 조금 소개하면, 환경이나 인간이 삶에서 얻는 경험은 뇌에서 일어나는 유전자의 발현을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DNA 자체에 흔적을 표시하는 화학적 변화를 촉발하거나, DNA 주위에 있는 단백질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로서 종종 일란성 쌍둥이가 서로 상당히 다른 상태를 보이는 경우를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각론에 해당하는 공감과 믿음, 성적 취향과 기억에 관한 설명 가운데 저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기억에 관한 부분만 정리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겪은 나쁜 기억을 지우기 위하여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두려움과 정서 기억의 생물학’이라는 부제를 달아 나쁜 기억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불과 7년 전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온 국민이 광우병에 걸려 죽을 것’이라는 극단적인 공포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그때까지의 과학적 데이터들은 크게 우려할 사항이 아님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만, 특정 목적을 가진 세력들이 위험을 지나치게 부풀려 국민들의 눈을 가렸던 것으로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역시 저만의 잘못된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2008년 광우병 사태처럼 우리가 두려움의 위력에 유독 민감한 까닭은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에서 우위를 점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뇌는 자연선택을 통하여 두려움을 느끼도록 신경망이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세상이 온통 힘센 동물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우리의 조상은 살아남기 위하여 위험을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도록 진화된 신경조직을 갖추게 된 것인데, 이와 같은 진화의 산물이 지구의 우세종이 된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이란 ‘인지된 위협에 대해 보이는 정서 반응’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특히 조건화된 경우 가중된 효과를 나타냅니다. 동료 가운데 닭고기를 먹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닭에게 쪼이는 무서운 경험이 고착된 때문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오히려 닭고기를 먹음으로서 무서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분의 경우는 공포의 대상을 회피하는 것으로 이미 두려움을 극복하는 기제를 갖추었기 때문에 도전이 필요치 않다는 생각일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선택한 것처럼 공포의 기억을 잊는 방식으로 회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불안해하는 마음이 깔려있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극단적으로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결국 문제의 원인이 되었던 사건으로 돌아가 해결방법을 찾아낼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건사고가 많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과 같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사건을 겪은 당사자들이 조건화된 불안장애에 빠지는 경우를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라고 진단합니다. 외상이 심신을 쇠약하게 하는 심리증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는 광범위한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때로는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기도 합니다. 저자는 우리의 기억이 시냅스에 새겨져 있는 것이라서 가소성이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공포를 느끼지 않도록 학습하는, 즉 공포소멸을 통하여 불안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분자 수준에서 공포소멸이 가능한 약물이 개발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저자는 뇌와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새로운 문을 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