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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ㅣ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평점 :
제목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먼저 ‘100세 노인이 창문을 너머 도망칠 근력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100세 이상 생존한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고는 합니다만, 타인의 도움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분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첫 번째 의문은 그렇다고 치고, 두 번째로 든 의문은 “이 노인은 왜 창문을 넘어 도망쳤을까”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작가가 분명하게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 “저 양로원에 웅크리고 앉아 <이젠 그만 죽어야지>라고 되뇐 것은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몸뚱이는 늙어서 삭신이 쑤실지라도, 알리스 원장에게서 멀리 벗어나 실컷 돌아다니는 일이 치 친구처럼 여섯 자 땅 밑에 누워 있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지 않겠는가?(10쪽)”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동기는 참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하루를 소진하는 것보다는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찾아나서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의 트렁크를 훔쳐 달아나고,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살인을 저지르고도 이를 은폐하기를 반복하는 일이 가능하겠나 싶습니다.
어땠거나 사건은 주인공 알란 칼손이 100세 생일을 맞은 2005년 5월 2일 기념파티를 앞두고 스웨덴의 말름세핑 마을에 있는 양로원의 창문 넘어 도망치면서 시작되는데, 버스터미널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이 맡긴 범죄와 관련된 돈 3750만 크로나로 채워진 트렁크를 들고 시외버스를 타고 떠나게 됩니다. 돈을 잃어버린 청년은 알란의 뒤를 쫓게 되고, 알란은 율리우스 욘슨, 베니, 예쁜 언니, 베니의 형 보세를 차례로 만나 범죄조직의 추적을 피하는 과정에서 볼트와 양동이를 살해하지만, 사체를 해외로 빼돌려 수사를 피합니다. 일반인이라면 우발적인 사고로 사람이 죽게 되더라고 이처럼 교묘하게 처리할 방법을 생각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이들을 뒤쫓던 범죄조직의 우두머리 예르딘마저도 이들과 의기투합하게 된다는 설정을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야기는 두 갈래로 진행이 됩니다. 알란이 100세 생일이 되던 2005년 5월 2일부터 스웨덴의 말름세핑에서 시작해서 6월 16일 일행이 인도네시아 발리에 정착하기까지와 1995년 말름세핑에 가까운 플렌에서 태어난 알란이 요양원에서 100세를 맞을 때까지의 행적을 뒤쫓고 있습니다. 알란이 100세가 될 때까지의 행적도 황당무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스페인에서 프랑코총통을 만나고, 미국에서는 트루먼대통령과 친분을 쌓게 되며, 이란에서는 처칠의 목숨을 구하고,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했다가 그 정보를 모스크바에 건네주지만, 블라디보스톡에 수감되기도 합니다. 한국전쟁기간 중에 북한으로 탈출하여 김일성과 모택동을 만나기도 하고, 인도네시아를 거쳐 파리로 갔다가 이번에는 미국 CIA의 스파이가 되어 모스크바에 다시 잠입하면서 소련이 붕괴되는데 기여하고는 말름세핑으로 돌아와 요양원에서 지내게 되었다는 이야기의 얼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인연이 결국은 100세가 되던 날 일으킨 사고를 마무리하고 친구의 부인이었던 아만다와 결혼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알란이 100세가 될 때까지의 삶의 궤적이 007시리즈의 제임스본드보다 허무맹랑할 뿐 아니라, 두 건의 살인이 완전범죄가 성립되는 과정이 허술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런 황당무계한 이야기에 세상 사람들이 열광하였다는 것이 신기하기 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면 최근 판타지물이 주목받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해내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한다는, 뭐 그런 이야기말입니다. 범인이 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심리도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요? 언젠가 이야기가 막히면 등장인물을 죽이고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던 소설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알란의 생애는 큰 흐름에서 보면 정교하게 짜 맞춘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있을 수 없는 우연이 연속된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깨어보니 꿈이었다고 마무리했더라면 훨씬 공감이 갔을 이야기라서 읽고 나서도 허망하다는 느낌이 진하게 남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