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존 버거 지음, 강수정 옮김 / 열화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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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은 얼마 전에 북 콘서트에서 만났던 김탁환작가님이 독서에세이 <읽어가겠다; http://blog.joins.com/yang412/13552374>에서 소개한 작품입니다. 마침 쓰고 있는 스페인여행기에서 포르투갈의 리스본에 다녀온 이야기를 쓰고 있어서 꼭 읽어보려고 마음 먹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미술비평가, 소설가, 사회비평가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영국작가 존 버거의 소설입니다. 존 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하나의 장편 소설이면서도 모두 8개반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독립적이기도 해서 단편소설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의 독자들에게 주는 서문을 보면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이 드러납니다. “죽은 이들이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건 여러분도 나만큼-아니 어쩌면 더-잘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면 망자들은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주려 합니다. (…)그런데 죽은 이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이제 정치적인 행위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그저 전통적이고 자연스럽고 인간다운 행위였죠. 그러던 것이, 이윤을 내지 못하는 것이면 전부 ‘퇴물’ 취급을 하는 세계 경제질서에 저항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세계 곳곳, 너무나 다른 여러 역사 속의 망자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면,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서문에서 보는 것처럼 작가임을 암시하는 주인공 존은 리스본, 제네바, 마드리드 아일링턴 등 유럽의 여러 장소를 다니면서 누군가를 떠올리고, 만나고,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데 읽다보면 존이 만나는 사람들은 죽은 이들이고, 그들이 죽을 때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존이 리스본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첫 번째 이야기에 끌리는 것 같습니다. 오월의 끝자락에 포르투갈 사이프러스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어느 광장에서 존이 우연히 조우한 노파가 어머니였습니다. “얼굴이 보이기 한참 전에 걸음걸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도착하기 전에 앉을 생각부터 하는 그 걸음걸이. 내 어머니였다(12쪽)” 그렇군요. 작가는 곁을 떠난 사람들 중에서 어머니를 가장 만나고 싶은 것 같습니다. 망자들은 죽으면 지상에 머물 곳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그렇다고 리스본에 와본 적이 있었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장소는 그냥 아무 장소가 아니라 만남의 장소인 것입니다. 어머니가 리스본을 머물 곳으로 선택한 이유는 전차가 다니는 몇 안 되는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존은 어머니와 이스트 크로이든에서 사우스 크로이든까지 갔다 돌아오는 194번 전차를 즐겨 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와 동행하고 있음에도 위층의 맨 앞자리에 앉고 싶어 했습니다. 앞자리에 앉고 싶어 했던 것은 운전을 하는 모습을 어머니에게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모퉁이를 돌 때가 제일 좋았다고 합니다.

 

리스본을 여행할 때 가이드는 리스본이 아홉 개의 구릉 위에 세워진 도시라고 했는데, 리스본 대지진의 기록을 정리한 니콜라스 시라디는 <운명의 날; http://blog.joins.com/yang412/13586205>에서 일곱 개의 구릉 위에 세워진 도시라고 적고 있어 헷갈리고 있는 점이 명쾌해지는 설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도시가 몇 개의 구릉 위에 세워졌는가에 대해서는 좀처럼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로마처럼 일곱 개라 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숫자야 어찌됐든 도심은 가파른 절벽 같은 암반에 터를 잡고 있어서 몇 백 미터나 솟아올랐다가 곤두박질친다. 그리고 몇 세기를 지나는 동안 가파른 그 거리들은 현기증을 가져 줄 온갖 방법을 동원해 왔다.(20쪽)” 바로 그렇습니다. 구릉이라는 것이 높이가 애매하면 합칠 수도 있고 떼어놓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코메르시우광장은 아무리 사람들이 많아도 늘 반쯤 빈 듯한 인상을 준다(24쪽)’라는 표현도 어쩜 그렇게 적절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어머니와의 만남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던 탓인지 리스본에서의 이야기가 가장 긴 것 같습니다.

 

제네바에서는 딸 카티아를 만났고,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는 기숙학교의 교사였던 켄을 만납니다. 생뚱맞아보이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죽은 이들이 기억하는 과일들입니다. 멜론, 복숭아, 자두, 체리, 큐치 등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제사상차림에 등장하는 조율시이(棗栗柿梨)라고 해서, 대추, 밤, 감, 배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일링턴에서는 학교친구 휴버트, 그리고 오드리를 만납니다. 대체적으로 이야기는 감정을 최대한 자제한 내레이션처럼 건조한 편입니다. 망자와 얽힌 이야기라서 일까요?

 

때로는 기억 속에 묻힌 옛이야기를 끄집어 내 곱씹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그것이 아픈 추억일지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남들에게 저의 속살까지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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