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뇌 인류 성공의 비밀
매튜 D. 리버먼 지음, 최호영 옮김 / 시공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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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의 시대라고 합니다. 특히 인터넷을 매개로 사회관계망을 강화하는 SNS, 즉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가 폭발적으로 확산되면서 사회관계망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웹을 통한 소통과 정보의 공유는 사회관계망의 개념 자체를 바꾸었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사회관계망은 지구상에 등장한 모든 생물체가 이용하여 살아남은 본능 같은 것 같습니다. 다만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얼마나 촘촘하게 망을 짜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사회관계망에 관한 저술들은 이미 적지 않게 소개되어 있지만, 이번 주에는 새로 나온 사회신경과학 분야의 저명인사인 매튜 리버먼교수의 <사회적 뇌, 인류 성공의 비밀>을 읽어보겠습니다. 저자는 철학에 관심을 두고 사회심리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는 사회심리를 연구하면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의 본질을 파고들다보니 바로 뇌가 인간을 규정하는 중심부위임을 깨닫고 인간의 사회적 행동과 뇌와의 관계를 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인간의 뇌는 우주에서 발견된 가장 복잡한 장치’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뇌에는 수십억 개의 신경세포가 존재하며 이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셀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신경적 교규를 주고받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큰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생존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복잡한 도구를 발전시켜왔다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뇌가 크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인간의 뇌무게는 약 1,300그램 정도인데, 아프리카 코끼리의 뇌는 약 4,200그램이고 몇 종류의 고래의 뇌는 약 9,000그램에 이른다고 합니다. 일단 덩치가 크면 뇌도 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뇌의 무게로만 따지면 동물들 사이에서 아래쪽에 위치하는 인간도 뇌에 들어 있는 신경세포의 숫자로 따지면 약 115억 개로 수위에 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고래가 약 110억개 정도로 인간을 바짝 뒤쫓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범고래는 사람들과 당당히 맞서 지구의 한쪽을 지배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신경세포의 숫자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뇌의 크기를 신체의 크기와 비교하여 예상치를 벗어나는 정도를 나타낸 대뇌화(encephalization)지수입니다. 대뇌화지수를 따지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을 월등하게 따돌리면서 수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래도 인간의 뇌무게와 비슷한 병코돌고래의 대뇌화지수가 8이 조금 안되는 인간에 이어 5보다 조금 큰 숫자로 뒤를 잇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가 큰 이유는 신피질이 크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신피질이 다른 동물에 비하여 큰 이유를 따지는 일은 어쩌면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나타난 생물종들 가운데 진화과정의 정상에 있는 인간의 신피질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필요에 의하여 조금씩 신피질의 부피가 늘어났을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신피질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현세의 우리는 돌연변이로 큰 신피질을 가지게 된 행운을 누린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즉 커진 신피질을 제대로 활용하여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진화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전자의 견해를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즉 인간의 신피질이 커진 이유는 영장류가 집단을 이루어 살면서 더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매튜 리버먼교수의 연구는 기능성MRI를 활용한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사람의 신체적, 정서적 활동으로 뇌의 어느 구역이 활성화되는지 확인이 가능한 검사장비입니다. 예를 들면 왕따를 당하여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버림을 받는 고통을 받으면 전대상피질이라고 하는 뇌구역이 활성화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때문에 비통해하는 사람,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 슬픔에 잠긴 사람, 주위의 부정적 평가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 심지어는 거부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상대를 바라보는 사람에서도 배측 전대상피질이 활발한 활동을 보인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아스피린과 같은 진통제를 처방하게 되면 사회적 고통을 덜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신체적 통증을 치료하는 진통제가 마음의 고통을 다스리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진화적 동기는 고통을 회피하고 쾌감을 얻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저자는 사회적 연결을 추구하는 동기가 갓난아기 시절부터 우리 모두에게 절박한 실제적 욕구라는 점을 실험자료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출산과 육아 역시 단순한 관심을 넘어 혈연과 가족이라는 기본적인 사회적 유대관계를 만드는 일인데, 이러한 사회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경우 역시 신체적 장애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건강에 해롭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사회적 유대에 대한 의존성 역시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의존도가 높은 사람은 사회적 유대가 흔들릴 때마다 심리적 고통을 크게 받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더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 유대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저는 가위 바위 보를 잘 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타인의 마음을 읽으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 증명한 것은 프리츠 하이더였다고 합니다. 저자의 주장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또 그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162쪽)”라는 것입니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프란츠 브렌타노가 제시한 ‘지향적 사고가 인간심리의 핵심’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를 토대로 한 사회적 지능 역시 대뇌의 신경망이 작용한 결과라고 합니다. 특히 배내측 전전두피질, 측두두정 접합, 후대상, 측두구와 같은 부위가 참여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전두엽의 전운동피질, 전두정간구, 하두정소엽을 포함하는 거울체계의 발견은 인간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신경과학은 역시 어렵죠? 신경병리를 전공한 저 역시 이런 부위가 어디쯤일 것이라고 가늠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사회적 유대에 의존하는 정도는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앞서 드렸습니다만, 제 경우는 의존도가 비교적 낮은 것 같습니다. 저자는 저 같은 사람을 ‘사회적 외계인’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저자 역시 그 범주라고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사회적 유대관계의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자폐증을 설명하는데 상당히 공을 들였습니다. 인구의 1퍼센트가 앓고 있다는 자폐증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언어 소통의 장애 그리고 반복적 행동을 주요 증상으로 합니다. 저자는 ‘공감이 사회적 마음의 꼭대기라면 자폐증은 사회적 마음의 골짜기에 해당한다(243쪽)’라고 비유하였습니다. 자폐증이 마음이론 능력의 결함과 관련이 있다는 점은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지만, 마음이론만으로는 자폐증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마음이론이란 경험, 내재적 상태 및 행동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사고체계를 의미합니다. 풀어서 설명하면, 실제 세계의 경험이 행동으로 이행하기까지에는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신념, 지식, 동기, 정서, 의도 등의 내재적 상태, 즉 마음이 존재하며, 이러한 마음이 행동을 매개하고 결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자폐증 환자가 보이는 마음이론 능력의 장애는 거울체계에 문제가 생긴 탓으로 설명하는 ‘깨진 거울 가설’을 인용합니다. 자폐증 환자가 다른 사람 흉내를 내는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입니다. 자폐증 진단이 통상적으로 세 살 이후에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여 한두 살 때의 홈비디오를 분석해보면 자폐증으로 진단받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인용합니다. 그런데 기능성MRI검사결과를 보면 자폐증 환자의 거울체계가 특이하지만 자폐증의 여러 증상에 분명하게 대응시킬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하여 자폐증의 발병과 관련하여 ‘강력한 세계 가설’에 무게를 두기도 합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강력한 세계가설은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은 사회적 세계에 대해 둔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민감한 것은 아닐까?(260쪽)’라는 의문에서 출발합니다. 어린 시절의 스트레스 때문에 사회적 세계를 회피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심리화 체계의 정상적인 성숙에 필요한 사회적 입력들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자폐증 환자의 유전적 소질 때문에 사회적 세계에 대해 둔감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반직관적인 이론으로 상당한 양의 경험적 근거가 쌓여가고 있지만, 아직은 본격적으로 수행된 연구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자폐증은 여전히 다수의 잠재적 원인과 발달경로가 개입된 매우 복잡한 심리장애로 분류되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강렬한 세계 가설을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회적 유대를 강화시켜가는 과정에서 타인과 연결망을 만들고, 타인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게 되면 다음 단계는 타인과의 조화를 이루는 단계가 될 것입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자신을 통제하는데 실패하면 타인으로부터 소외될 뿐 아니라 그 정도가 심각하다면 사회에서 퇴출될 수도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최고의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의사들 가운데 만약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또다시 의사가 되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의과대학에 입학하기 위하여 엄청난 자제력를 발휘하고 무수한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하고, 막상 의과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결과로 행복이 따라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의사가 되는 것은 의사 자신보다 사회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더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저자는 사회적 관계망의 확대를 통하여 인류는 더 현명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사회 안에서 타인들과 관계를 연결하고,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며,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스스로를 통제하는데, 일련의 과정들은 대뇌의 신경망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모두에서 인터넷을 매개로 사회관계망을 강화하는 SNS가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나 직장 내의 ‘왕따’, 아동 학대, 은둔형 외톨이, 사이코패스, 반윤리적 범죄 같은 문제들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의 정신과의사 오카다 다카시는 ‘개인, 개성, 자아만을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가 인간의 사회성을 후퇴시켰으며, 이로 인해 타인의 감정, 정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급격히 상실되었다’라고 주장합니다(오카다 다카시 지음, 소셜 브레인, 브레인월드, 2010년). 그리고 최첨단 네트워크는 결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소셜은 기계가 매개하는 건조한 것이 아니라, 원초적이며 인간적인 관계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이 결코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사회적 관계망 하나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 오히려 위험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 점에서 하버드대학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행복학’ 강좌를 이끌고 있는 숀 아처교수의 주장은 참고할만합니다. 즉, 지능지수(IQ), 감성지능(EQ), 그리고 사회지능(SQ)을 통합하여 행동과 실천으로 옮기는 긍정지능이야말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손 아처 지음, 행복을 선택한 사람들, 청림출판, 2015년).

 

오늘은 고 김광석씨가 행사를 마무리할 때 전했다고 하는 메시지로 리뷰를 마치려합니다. “[북소리] 독자 여러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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