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그녀에게 - 서른, 일하는 여자의 그림공감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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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는 일부러라도 미술에 관한 책들을 읽을 기회를 만들려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요약정리는 하지 못하고 있지만, 꾸준하게 읽다보면 선무당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선일보의 곽아람기자의 <그림이 그녀에게>도 같은 맥락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전문적인 미술사 서적도 아니고, 세련된 커리어우먼의 멋들어진 명화감상기는 아니지만, 이십대를 보내면서 만났던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를 같은 또래의 여성들과 공감하기 위하여 수다를 떨 듯이 적어보았고 하였습니다.

 

서른 개의 작품을 각각, 공감, 그리움, 위로, 휴식이라는 주제어로 나누어 배치하였는데, 살면서 얻는 느낌을 맞춤한 그림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주제어 공감의 첫 번째 이야기는 저자가 여성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느끼게 된 ‘차별’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의학공부를 시작하던 시절 만해도 여자 동기가 10퍼센트도 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만, 요즈음에는 절반이 넘어선 지가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공부하던 시절도 그랬습니다만, 지금도 여성을 차별하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자들 세계에서는 답답한 무엇이 있는 모양입니다. 혹시 여자라서 특별한 대우를 바랐던 것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그래서 저자는 <그림 드리는 여자>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자크 루이 다비드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던 이 작품은 19세기 초반에 프랑스화단에서 활동한 마리 드니즈 빌레르의 작품이라고 알려졌는데, 처음부터 그녀의 작품이라고 알려졌더라면 이 작품이 유명해졌겠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19세기는 서양사회가 여성이 한 곳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것을 금기로 여기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여성들은 오히려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프릴 달릴 블라우스 증후군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서른 개의 이야기는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먼저 저자가 살면서 느꼈던 생각에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느낌이 잘 어울리는 그림을 소개하고, 그 그림을 그린 화가와 화가가 활동하던 시절의 분위기 혹은 작품의 배경을 간단하게 요약하고, 그 그림을 인용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림에 관한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전체적인 느낌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내용을 읽다보면 마치 곁에 앉아서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쉽게 읽힌다는 점입니다. 저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 도치법으로 문장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그만하면 ‘예쁘장한 인생’이었다, 취직하기 전까지는.(14쪽)” 저도 가끔은 그렇습니다만, 주어를 생략하는 문장을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별로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림을 인용하는 것도 독특합니다. 제목과 그 아래 본문에서 핵심이 되는 글을 일부 따오고, 다음 면에 그림을 실었습니다. 그런데 화가와 그림 제목은 달았지만, 어디에 소장되어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오른편 쪽의 맨 위에 그림의 일부를 손톱크기로 잘라내서 실었습니다. 그 쪽에 담겨 있는 본문의 내용이 시사하는 그림 내용을 다시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글 내용이 더 쉽게 이해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여자의 외로움은 드라마에 빠져있기 때문에 비롯된다는 주장에는 공감할 수 없습니다. 제가 드라마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외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별로 없습니다. 남성이라서 외로움을 덜 타는 것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 우울할 때, 한 점의 그림이 위로가 된다는 것을 적으면서 저자는 존 싱어 사전트의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를 인용합니다. 그런데 저자가 런던의 테이트겔러리에서 이 그림을 보았을 때 얼어붙는 듯했다고 합니다. “그림 속 어스름은 화폭 밖으로 뿜어져 나와 전시실을 가득 채웠고, 흐드러진 백합과 장미 꽃송이들이 해질녁 대기와 어우러져 싱그러운 향기를 품어냈다. 그리고 마치 천사처럼 창백한 두 소녀들! 나는 전시실 의자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굶주림에 허덕이던 이가 먹을 것을 탐하듯 정신없이 눈으로 훑어 그림을 탐닉했다. 눈물이 흘렀다. 순간, 화재겅보기가 울렸고, 미술관에 있던 관람객들은 모두 밖으로 쫓겨났다. 만남은 짧았지만, 그림은 더욱더 뇌리에 남았다.(144쪽)” 그림을 마주한 순간 눈물을 흘렸다는 감수성이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제임스 엘킨스의 <그림과 눈물; http://blog.joins.com/yang412/12435742>에서 읽었습니다만, 여기 또 하나의 사례를 더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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