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죽음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장왕록 옮김 / 책미래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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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지난해가 되고 말았습니다만, 스페인 여행길에 투우장에 제일 가깝게 가본 것은 론다입니다. 론다의 느낌을 적는데 아무래도 투우 이야기를 빠트릴 수 없을 것 같아 자료를 찾아보는데 여행작가 박정은씨가 <스페인 소도시 여행>에서 론다를 소개하면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에세이집 <오후의 죽음>을 인용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허니문이나 애인과의 도주가 론다에서 성공할 수 없다면, 파리에 가서 친구를 사귀는 것이 낳다.”(박정은 지음, 스페인 소도시 여행, 151쪽; http://blog.joins.com/yang412/13552146) 고등학교 다닐 무렵, 여름방학을 바쳐서 헤밍웨이전집을 읽어내느라 더위를 잊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헤밍웨이가 투우에 몰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사실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투우를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는 하지 못했습니다만, 적어도 투우장 구경을 할 수는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준비가 덜 된 여행이었던 탓에 론다에서 좋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6유로를 내면 투우장과 투우박물관을 돌아볼 수 있었다는데, 우리의 가이드도 귀띔을 해주지 않아서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처음 투우를 구경하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들까 생각해봅니다. 헤밍웨이는 “처음으로 투우 구경을 하러 갔을 때, 나는 몸서리를 치게 되리라고 또 아마도 구역질이 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9쪽)”라고 하는데, 저도 그럴까요? 그의 말대로 투우는 확실히 잔인한 구석이 많고, 스스로 구하는 것이건 예측하지 않은 것이건 간에 언제나 위험이 있으며 항상 죽음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헤밍웨이가 투우에 매료된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곳에 죽음이 있기에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폭력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유혈이 낭자하게 펼쳐지는 투우장에서 피에 대한 욕구가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요? 헤밍웨이 역시 자신을 동물과 동일시하는 사람들, 곧 거의 직업적으로 개나 그 밖의 짐승을 애호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쉽사리 동물과 동일시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인간에 대하여 더 심한 잔인성을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15쪽)”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오후의 죽음>을 ‘투우를 변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투우를 종합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쓴다’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투우에 관한 모든 것, 투우의 역사에 관련된 다양한 사건들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습니다. 심지어는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겁에 질린 투우사가 소에게 떠받쳐 나동그라지는 모습을 상세하게 적으면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까지 분석하기도 합니다. 가장 볼 만한 투우는 노비야다 투우이고, 그것을 보는데 가장 좋은 곳이 마드리드라는 것도 알려줍니다. 심지어는 투우를 구경하는 자리 가운데 으뜸이 투우사들이 망토를 걸쳐놓는 붉은 나무 울타리, 즉 바레라라는 것도 알려줍니다.

 

그런데 투우를 한번만 구경하려는 사람이라면 바로 론다가 제격이라는 것입니다. ‘그곳은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을 가거나 혹은 누구와 함께 도망칠 때 꼭 갈만한 곳이다.’라고 하면서 ‘여기서도 신혼여행이나 사랑의 도피행각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파리로 떠나거나 아마 각기 헤어져 새로운 배필을 구하는 것이 더 좋을 것(62쪽)’이라고 한 것은 그만큼 보증수표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박정은 작가께서 헤밍웨이를 조금 오해하신 바가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오후의 죽음>을 읽고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본격적으로 투우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텍스트라는 생각은 분명한데, 투우 전문용어를 풀이한 100쪽은 그렇다고 쳐도 원본에 포함되어 있다는 100쪽에 달하는 사진과 설명을 통째로 빠트리는 바람에 투우에 대한 생생한 느낌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더하여 ‘한국 번역문학의 거장, 장왕록 서울대 교수의 번역’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번역 문투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지금 연재하고 있는 스페인 여행기(http://www.medicaltimes.com/Users4/News/NewsList.html?nSection=32)에서는 읽어보실 것을 권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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