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아시아네트워크 엮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아시아를 몰랐고, 아시아는 우리를 몰랐다는 자각을 바탕으로, <한겨레21>이 구심점 역할을 하여 아시아 20개여 나라의 언론인들과 민주화운동가를 하나로 묶어 ‘아시아네트워크’를 구성하였다고 합니다. 서구 중심의 외신에 의존하지 않고, 아시아를 온전히 아시아인의 눈으로 보자는 것이 아시아네트워크를 통한 언론실험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주제로 구성된 글들은 모두 다섯 묶음으로 나누고 있는데, 먼저 ‘해묵은 거짓말’에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인도 독립투쟁의 원동력이었던 간디에게는 노동자들이나 계급평등을 염원하는 이들에게는 히틀러와 같은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수카르노에 이어 인도네시아를 이끌었던 수하르토 역시 1965년 10월 1일 공산당이 합법적인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일으켰다는 쿠데타인 G30S에 깊이 관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의 상당부분이 날조되어 수하르토의 집권을 정당화하는데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인권투사라는 이미지를 앞세웠던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은 토지개혁이나 인권회복부문에서는 개선이 지지부진하기만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특정인, 특히 정치인의 경우 정적이 내세우는 논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반대의 주장 역시 같은 무게로 검토하고 비교해서 논리적이지 못한 쪽을 버리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일단은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참고할 점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의 배경에 대한 분석자료에서는 얼마 전에 읽은 도올의 책에서도 같은 맥락의 글을 읽은 적이 있어 새롭지는 않습니다. 다만 폴포트가 집권했던 시기(1975~1979년) 이전에 벌어진 미군의 캄보디아 폭격(1969~1973년)과 그로 인한 사망을 따져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폴 포트가 200만명을 살해했다는 주장은 미국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폴포트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필자는 1969~1973년 사이 미국의 폭격으로 60~80만이 죽었고, 폴포트 집권 직후에 10만명의 지식인과 시민을 처형하였으며, 1975~1979년 크메르루주 집권 기간에 과로, 질병, 기아로 사망한 70~80만을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대캄보디아 구호사업을 차단하여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폴포트의 책임은 줄이고 미국의 책임을 늘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반대측 주장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1980년 광주, 1984년 필리핀, 1990년 랑군, 1992년 방콕, 1998년 자카르타 등 연쇄적으로 일어났던 피로 점철된 민주화운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이미지를 던지는 듯합니다. 필진들이 공통적으로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6.25동란을 일본, 인도, 태국, 필리핀 등, 당시 관련된 국가의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있는 시도는 독특한 점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일본의 필자는 이 전쟁으로 일본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7살이었던 필자가 이웃에 있던 공장이 파산직전이었는지를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도의 경우는 이 전쟁에서 서방의 논리를 인정하면서도 비동맹정책을 내세워 중재자 노릇을 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참전을 강요당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존 할리데이와 브루스 커밍스 등이 내놓은 ‘잊어버린 전쟁’이라는 주장에 따라, ‘필리핀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고자 남한에 군대를 파견한다(86쪽)’는 주류의 입장에 반하여 미국의 용병론을 내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필리핀의 비주류논리를 이끌고 있는 월든 벨로교수는 “한국전쟁은 소련이 자유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북한군을 38선 공격대로 활용했다는 미국식 논리를 지닌 전쟁이 아니었다. 한국 사회 내부가 충돌한 가슴 아픈 내전이었을 뿐이다. 북한과 남한은 한국전쟁이 벌어지기 전부터 이미 몇 년 동안 피로 얼룩진 전투를 해왔고, 그 분쟁은 미국과 소련 의도에 따라 국경분쟁 이상의 것으로 강요되었다.(88쪽)”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6.25동란의 경과와는 전혀 다른 시각이라고 보이는데, 무엇을 근거로 이런 주장이 나오게 되었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인도나 태국처럼 남아있는 당시의 자료도 변변치 못한 형편이라고 하는데, 이런 과감한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이 어디에 있는지 말입니다.

 

그밖에도 아시아에 강하게 불고 있는 민족주의, 성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 등 다양한 주제들이 다루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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