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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밤
세사르 비달 지음, 정창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0월
평점 :
<폭풍의 밤>을 읽게 된 배경은 스페인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과 세익스피어의 유언장에 담긴 비밀을 다루고 있다는 해설 때문이었습니다. 이야기가 스페인에서 전개되지 않을까 싶었지지만, 전적으로 영국을 무대로 한 작품입니다.
저자 세사르 비달은 마드리드에서 출생하여 법학을 전공한 다음, 역사학, 철학, 신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며, 역사분야의 학술서와 역사적 사실과 자료에 기반을 둔 장르소설을 발표해왔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저작이 많은데도 2008년에 우리말로 옮긴 <폭풍의 밤>이 유일하게 국내에서 소개되어 있는 듯합니다.
영국, 아니 세계적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들은 많이 읽었고 무대에 올려진 작품들도 여러 편 감상했을 뿐 아니라 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작업에도 참여한 적이 있지만, 그의 삶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폭풍의 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템페스트>에서 따온 제목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유언장을 토대로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분석하여 셰익스피어의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졌음직한 이야기로 꾸며냈습니다. 놀라운 작가적 상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는 <햄릿>에서 등장하는 실존하지 않은 인물도 있습니다.
사실 저도 처음 알게 된 셰익스피어의 유언장 내용은 누가 보아도 의문을 품을 것 같습니다. 1564년 4월 26일일 태어난 셰익스피어는 18세가 되던 해에 26세인 앤 해서웨이와 혼인했고, 1583년 5월 23일에 딸 수잔나(Susanna)가 그리고 1585년에는 쌍둥이인 햄닛(Hamnet)과 주디스(Judith)가 태어났는데, 셰익스피어는 곧장 고향을 떠났고 행적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1590년경에야 런던에 나타났고 이때부터 배우, 극작가, 극장 주주로 활동하다가 1616년 4월 16일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햄닛은 어려서 죽었고, 유족으로는 아내 헤서웨이와 수잔나 그리고 주디스 그리고 큰 사위인 내과의사 존 홀과 포도주(葡萄酒) 제조업자인 작은 사위 토마스 퀸네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셰익스피어의 유언장에는 셰익스피어가 소유했던 대부분의 유산을 큰 딸 수잔나에게 상속하면서 그녀가 낳을 첫 아들에게 상속시키라고 되어 있었지만, 당시 법으로도 상속받을 권리가 있었던 아내에게는 ‘나의 두 번째 좋은 침대’만을 물려준다고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폭풍의 밤>의 작가 세사르 비달은 그저 의문을 품은데 그치지 않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그 해답을 구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는 셰익스피어가 죽은 뒤 열흘 째가 되는 1616년 4월 25일 평생토록 해왔던 남편에 대하여 치를 떠는 앤 헤서웨이의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유언장이 공개되는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그 장소에는 아내 헤서웨이, 큰 딸 부부, 작은 딸 부부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여동생, 그리고 검은색 상복을 입은 남자가 셋, 그리고 푸른색 옷차림에 붉은 깃털로 장식한 노랑 모자를 쓴 복부가 비대한 사내가 모여있습니다. 푸른색 옷차림의 사내는 독특한 모습이지요? 그 사람이 지나칠 때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는 수잔나의 생각을 놓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유언장의 내용은 앞서 말씀드린 내용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의 저주를 들으면서 수잔나 역시 차갑고 오싹한 땀이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하느님에게 버림받은 자들이 어두컴컴한 지옥에서 겪는 무시무시한 형벌 같은, 우리 모두에게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유언장 낭독이 끝나고 나서 모두가 함께 돌아서는 길에는 무거운 침묵뿐이었다.(33쪽)”라고 분위기를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이른 아침에 수잔나는 바로 푸른옷을 입은 남자의 방문을 받고 그날 밤에 자신을 찾아와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을 꼬박 새우면서 유언장이 그렇게 작성될 수밖에 없었던 놀라운 배경을 설명해줍니다. 푸른 옷일 입은 사내의 설명을 듣다보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내용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