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남미 여행상품을 고르던 중에 페루를 소개하는 내용에서 로맹 가리의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발견했습니다. ‘새들은 왜 페루에 가서 죽을까?’ ‘그곳에 가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막상 책을 받아들고 보니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표제작으로 모두 열여섯 편의 단편을 묶은 단편소설집입니다. 이야기의 길이는 다양해서 가장 긴 ‘어떤 휴머니스트’가 32쪽에 달하지만, ‘벽-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나 ‘킬리만자로에서는 모든 게 순조롭다’는 각각 10쪽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모든 작품들이 기승전결이 잘 구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반전은 뒷통수를 때리는 듯합니다.

 

‘킬리만자로에서는 모든 게 순조롭다’를 예로 들면, 마르세유 부근에 작은 도시 투샤그에 서 있다는 위대한 탐험가 알베르 메지그의 동상에 관한 이야기는 반전도 모자라서 반전을 업그레이드시키기까지 합니다. 투샤그의 이발사 알베르 메지그는 사랑하는 피송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세계 여행을 떠나고, 가는 곳마다에서 고향사람들, 특히 사랑하는 피송양 앞으로 엽서를 보내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의 경쟁자였던 이발사 피샤르동에게는 “콩고에서 안부를 묻네. 이곳엔 보아 뱀들이 우글거리네. 자네 생각을 하며.(220쪽)”라는 엽서를 보냈는데, 피샤르동은 경쟁자인 메즈그의 동상을 세우는 운동을 벌이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길을 잃었어. 모래 위에 당신 이름을 쓰지. 난 사막이 좋아. 당신 이름을 쓸 자리가 많으니까. 목이 마르지만, 우리는 기운을 잃지 않고 있어. 구원은 언제나 마지막 순간에 온다는 걸 여행가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거든. 습도가 높아서 당신 어머님이 고생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는데(221쪽)”라고 적힌 엽서를 받게 되면 어떤 여인이라도 애닯은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절로 들지 않겠습니까? 도시에서는 메지그의 이런 엽서들을 묶어서 <알베르 메지그의 여행과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메지그의 여행은 훌륭한 탐험가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고향 처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떠난 것이라고 알려졌는데, 문제는 세계 어디에서도 그를 보았다는 사람이 없다는 점과 당시의 프랑스 신문 어디에도 그의 행적에 관한 기사가 나온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투샤그 주민들은 그가 에베레스트에 오르다가 산소결핍으로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고 했는데, 정작 그의 행적은 묘한 곳에서 드러나고, 그가 죽음에 이른 원인이 밝혀집니다.

 

‘영웅적 행위에 대해 말하자면’에서는 생텍쥐베리 등을 인용하여 일부러 죽음을 무릅씀으로써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설파하는 강연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신사가 그의 논리를 깨기 위하여 강연자를 상어잡이에 초대하고 가상으로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는데, 그 상황에서 강연자는 “제아무리 영웅이라도 죽음의 위험에 직면해서는 삶의 항구적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 그런 경우 영웅은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사실(235쪽)”을 깨닫게 됩니다. 이 강연자는 다음 번 강연에서 어떤 결론을 내놓게 될까요? 작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훼방꾼의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작품이 유일하게 반전의 충격이 작은 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 작품 ‘우리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 있으라’는 한 마디로 충격 그 자체입니다. 코네티컷주 이스트 햄프턴 공항에서 열린 인류의 개척자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환영대회의 장면을 스케치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보이던 상황 스케치는 어느 순간 ‘방사선’이 나오고 ‘가속화된 진화’ 그리고 ‘돌연변이’와 같은 심상치않은 단어가 튀어나오더니 ‘난 파리가 먹고 싶어’라는 아이의 칭얼거림이 나옵니다. 결국 미국과 러시아가 백 메가톤급의 핵폭탄을 터트리면서 시작된 돌연변이는 놀랄 정도로 인류를 개별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된 것입니다. 통제받지 않는 핵이 안고 있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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