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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 제2회 퍼플로맨스 대상 수상작
박소정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2월
평점 :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작가적 상상을 무한하게 펼쳐낼 수 있는 공간이 역사 속에 널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한복을 입은 남자>에서도 작가는 측우기와 자격루와 같이 당대로서는 획기적인 발명품을 만들어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장영실이 어느 시점부터는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데 착안해서 장영실이 정화함대에 동승하여 로마에까지 흘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자신의 과학적 업적을 이어가게 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우고 있습니다.
젊고 감성이 넘치는 박소정 작가님은 약재를 관리하는 내의원과 궁궐의 의복을 제조하고 재물과 장신구를 관리하는 상의원에 향장(香匠)이라는 직책이 있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들 중 누군가 조향사(調香士)를 꿈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소설로 엮어냈다고 합니다. 후각에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난 주인공 수연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병자호란을 거쳐 연경에 볼모로 잡혀가는 세자와 봉림대군의 일행에 포함되어 조향에 눈을 뜨게 될 뿐 아니라 봉림대군과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안배하고 있는 점도 돋보입니다.
하지만 작가적 상상력이 지나치다 싶은 점도 없지 않은데, 봉림대군과의 우연한 첫 만남이 나주의 어느 객주에서 이루어진다는 설정은 당시 대군이 지방까지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또한 수연이 동래에서 나주로 그리고 한성으로 사는 곳을 옮기고 있는데, 상민이 거처를 이토록 쉽게 옮길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 남는 부분입니다. 물론 이야기가 물 흐르듯 하도록 설정을 그리한 것이라면 그만이지만, 역사물의 경우 고증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궁안에서 죽은 후궁이나 군왕의 시신을 궐 밖으로 빼돌리는 일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시대적 배경은 조선 인조에서 효종에 이르는 시기이지만, 이야기 내용은 지극히 현대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기생인 어머니를 두고 떠난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밉다고 칭얼거리는 수연에게 어머니가 해준 말입니다. “사랑은 종잡을 수 없는 거야. 그러니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마음의 소리만을 듣거라(19쪽)” 어린 수연이 사랑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코는 안 막아?’라고 다시 물었다는 것입니다.
향기가 중요한 주제가 되기 때문이겠지만, 다양한 화초를 비롯하여 향을 내는 물건들에 대하여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사실을 많이 깨닫게 된 것은 책읽기의 부수입이 되었습니다. 궁중이 무대가 되는 역사물에서는 권력싸움과 사랑이 복잡하게 엮여야 재미가 더한 것처럼 젊은 시절을 마음을 주었던 단과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되는 봉림대군-나중에는 왕위에 오르게 되고, 효종으로 추존되는 정연 그리고 단을 마음에 두게 된 서향 등이 복잡하게 얽혀 수연이 죽음을 맞게 되고, 정연과 단 그리고 서향의 도움으로 죽음을 가장하여 궐을 빠져나가게 되고 나중에는 정연까지도 궐을 버린다는 설정입니다. 사실 삶의 목표를 북벌에 두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종기 때문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고 있는 효종께서 사랑 때문에 왕위를 버린다는 설정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는 말씀도 빠트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수연만을 뒤쫓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마치 영화를 보듯 등장인물에 따라서 장면을 수시로 바꾸고 있는데, 상황의 변화를 속속들이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이어지는 상황을 단속적으로 설명하기도 해서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기도 합니다. 사약의 부작용으로 실명한 수연이 조향을 위하여 들꽃을 꺽는 순간, 그녀를 끌어안는 누군가가 입은 측백향을 맡으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보니 서양에서는 향수를 뿌린다고 하지 않고 입는다고 표현한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조선의 역사에서 향장(香匠)이라는 색다른 직업군을 발굴하여 이야기를 엮어낸 작가의 독특한 시각이 놀랍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고증의 문제는 잠시 미루어둔다면 재미있게 읽히는 한 편의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