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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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 퓨전 사극 <비밀의 문>을 즐겨 보고 있습니다. 역사는 불변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새롭게 발굴되는 자료가 기존의 정설을 뒤엎기도 하고, 기존의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재해석의 범위가 지나쳐 역사를 왜곡한다는 우려를 낳기도 합니다. 특히나 역사학의 범주가 아니라 흥미본위의 드라마 혹은 영화의 경우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KBS에서 PD로 활동하면서 숱한 히트 프로그램을 연출하였고, 영화에서도 히트작을 냈을 뿐 아니라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도 한 이상훈 작가님의 <한복 입은 남자>는 중세 역사를 새롭게 써야 할 가능성을 던지는 계기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물론 충분한 근거가 뒷받침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세종시대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과, 중국 명나라 시절에 대항해시대를 연 정화, 그리고 이탈리아의 천재적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론의 시작은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였고, 다빈치의 비행기와 다연발 로케트의 스케치가 조선의 비차와 신기전과 흡사하다는 내용이나, 세종실록에서 홀연히 사라지는 장영실에 대한 기록, 명나라 정화의 마지막 대항해에 대한 미스터리 등을 기본 조각으로 하고, 그 사이에 빠져 있는 그림들을 채울 퍼즐조각은 혹시 존재할 수도 있는 가상의 기록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현실의 이야기는 미스터리한 면이 강하다는 느낌이 들고 과거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다큐PD를 중심으로 현존하는 퍼즐조각과 가상의 기록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다룬 현재의 이야기와 재구성된 자료를 토대로 한 과거의 주인공들, 즉 장영실, 정화 그리고 다빈치가 연결되는 과정을 다른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교차시켜 책읽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작가는 장장 10여년에 걸쳐 역사적 자료를 빈틈없이 준비하고 충분한 고증을 거쳤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아직은 추론 단계에 머물 수밖에 없지만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장영실이 세계의 르네상스에 영감을 불어넣었을 위대한 천재 과학자였을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이 재조명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절대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허구가 아닌 것이다. 500여 년의 시공간을 뛰어 넘어 역사 저 건너편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상상의 날개를 펼쳤을 뿐이다.(520쪽)”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로마 교황청이 중심이 되어 신을 모시는 일이 우선인 유럽과 신으로부터 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을 위임받아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는 일이 우선인 동양의 철학적 차이를 장영실을 통해서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너는 나에게 배운 지식을 더욱 발전시켜서 과학과 기술이 세계를 지배하도록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신을 위한 세상이 아닌 사람을 위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인본주의다. 과학과 기술이 인본, 즉 사람이 중심이 되어 백성을 편하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나를 여기까지 보낸 조선의 임금의 뜻이자 또한 나의 뜻이다.(438쪽)” 그리고 보니 세종의 통치철학은 르네상스시대의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 역사에 남아 있는 정화의 대항해는 아프리카까지 진출하고서 7차로 중단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상 정화가 로마에 나타났다는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자는 정화의 선단이 로마에 가는 길에 장영실이 동행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내놓고 있는 것이며, 유럽보다 먼저 제작된 정화의 세계지도가 유럽의 항해가들에게 전해서 지중해를 벗어나 먼 바다로 나서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작품에서 보는 것처럼 정화를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포르투갈의 왕이 바스코 다 가마를 내보내 정화의 항로를 거슬러 올라 인도로 가는 길을 개척하기에 이르렀고, 정화의 세계지도는 컬럼버스와 미젤란으로 하여 대서양을 건너 동양에 닿을 수 있고, 세계일주가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부피는 만만치 않습니다만, 방송과 영화를 통하여 이야기를 재미있게 버무려온 작가의 날렵한 솜씨 덕분에 단숨에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저 측우기와 자격루를 발명했다고만 알고 있는 천재 과학자 장영실을 다시 조명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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