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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
자크 아탈리 지음, 이재룡 옮김 / 사월의책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지난 번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꼬르도바에 들렀을 때 조형진 가이드는 메키스타 회교사원을 설명한 다음에 유대인마을로 일행을 안내하면서 꼬르도바의 현인 마이모니데스의 좌상을 소개하였습니다. 인터넷에서 마이모니데스를 검색했을 때 발견한 책이 바로 자크 아탈리의 장편소설 <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입니다. 소설의 무대가 꼬르도바와 톨레도는 물론 프랑스 서부에서 모로코의 패스에 이르기까지 이슬람과 가톨릭이 긴박하게 세를 겨루던 장소가 무대가 될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를 주석한 아베로에스와 마이모니데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철학서를 뒤쫓는다는 얼개에 관심이 끌렸습니다. 이미 <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http://blog.joins.com/yang412/12860768>을 통해서 만나본 바 있습니다.
<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는 에코의 <장미의 이름; http://blog.joins.com/yang412/12891200>처럼 시대를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역사 추리소설이라고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대단히 믿기 어려울 테지만 여기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이며, 등장인물들은 실존인물들이며 생각과 행동 방식은 이 시대의 이념에 충실하다’라고 전제하여 책을 읽는 이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일단 등장인물이 친숙하고 이들의 활동무대가 되고 있는 꼬르도바, 톨레도 그리고 페스 등을 돌아본 경험이 책에 쉽게 빠져들게 하였습니다.
시대적 가톨릭과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모두 유일신을 믿는 종교인데, 같은 지역에서 세력을 다투면서 살다보니 서로를 존중하던 시절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자는 1100년을 전후로 약 20년 동안, “역사상 딱 한 번, 딱 한 곳(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유일신을 믿는 세 개의 종교가 서로를 존중하고 찬양하며 서로에게서 자양분을 섭취하는 길을 택했다‘라고 전합니다. 이 시기에 꼬르도바를 수도로 한 알모라비데왕조가 포르투갈의 알폰소1세왕의 침략을 받아 위기에 처하자 회교도인 알모아데족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알모아데족은 오히려 알모라비데왕조를 내쫓고 꼬르도바를 차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과 가톨릭교도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유대의 숨은 현인 엘리파르는 랍비 마이문에게 시집간 누이의 아들 모세에게 그리스의 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설명하곤 했는데, 새로 들어선 이슬람 왕조의 탄압으로 죽음에 몰리면서 조카에게 톨레도로 가서 제라르도라는 사람을 찾아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책의 사본을 받으라고 부탁합니다. 한편 꼬르도바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이븐 루시드(아베로에스)는 펑소 아리스토텔레스야말로 진리의 원천이며, 코란은 과학적 논고가 아니라 단지 과학에 존재하는 진리에 접근하는 방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해서 이슬람교도들의 비난을 받게 되는데, 결국은 칼리프의 소환을 받아 수도인 모로코의 마라케시로 호송됩니다. 이곳에서 칼리프의 최측근인 이븐 투파일의 지시에 따라서 똘레도로 가서 제라르도라는 사람을 만나 역시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책의 사본을 받아오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모세와 이븐 루시드는 동시에 제라르도를 만나게 되고, 제라르도는 두 사람에게 각각 다른 길을 안내하게 됩니다만. 결국 두 사람은 모로코의 패스로 향하게 됩니다. 패스에서 두 사람은 원하는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두 사람의 행로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뒤덮고 있어, 이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뒤쫓은 두 사람을 위협하는 무리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슬람이 배경이 되는 책을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거창하게 길어서 서로 헷갈리는 바람에 자꾸 되돌아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작가가 촘촘하게 짜놓은 틀은 어긋나거나 어색한 점도 없이 매끈하게 마무리에 이르게 됩니다. 다만 이븐 루시드와 모세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책을 손에 넣게 되는지는 독자의 몫이 되고 만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븐 루시드, 즉 아베로에스는 앞서 소개드린 것처럼 <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과 이 책의 두 주인공이 뒤쫓고 있는 <절대적 영원에 대한 논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결정적 논고>를 저술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1100년을 전후한 이베리아반도와 모로코 지역과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좋은 책읽기였습니다. 또한 세 가지 종교의 유사점과 차이점도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