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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가겠다 -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1월
평점 :
김탁환 작가님은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이라 할 만합니다. 소설을 그리 자주 만나는 편이 아닌 저도 <혁명>을 비롯해서 읽어본 그의 작품만 해도 몇 가지나 됩니다. 이번에 나온 <읽어보겠다>의 서문에서 저자는 라디오에 관한 추억을 한 자락 펼쳐놓고 있습니다. 저 역시 라디오를 끼고 살았던 세대입니다만, <쌍뻬의 어린 시절>에서 “라디오와 더불어 나는 멀리 도망칠 수도, 꿈을 꿀 수도, 다른 것을 생각할 수도, 몇몇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었습니다. 라디오가 나를 구원해주었다고 생각했으니까요.(6쪽)”라는 대목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김작가님 역시 그랬던 모양입니다. 저도 라디오 대담프로에 몇 년을 나가보았습니다만,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방송시간에 맞추어 대본을 모두 써가지고 가야 마음이 놓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김작가님은 대본도 없어 15분 동안 책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무려 5년 동안이나 말입니다. 15분이 아주 짧을 것 같습니다만, 혼자서 이야기를 한다면 만만한 시간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처럼 방송에서 책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놓은 책이 바로 <읽어보겠다>라고 합니다. 젊음에 잘 어울릴 것 같은 23편의 소설을 마치 방송에서 다루듯이 깊이 천착해보겠다는 것이 이 책의 기획의도라고 합니다. 이 소설들의 특징은 ‘열망’과 ‘덧없음’이라고 합니다. 결국은 인간답게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기 위한 책읽기가 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아주 오래 전에 읽은 것들까지 포함해도 여섯 편 밖에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는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밑천이 들통나는 것도 잠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김작가님께서 좋은 작품들을 소개해주셨구나, 또 제가 읽은 작품들은 어떻게 보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책읽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마치 청취자들에게 작품의 중요한 논점을 조곤조곤 들려주듯이 글을 풀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읽힐 뿐 아니라 느낌이 잘 맺어지는 것 같습니다. 소설의 한 대목을 직접 인용해서 들려준 다음 그 대목에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 정리하고 있는데, 물론 간혹 읽기를 멈추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저자의 설명에 공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를 읽으면서 영화 <살아한다면 이들처럼>에서 뜨거운 사랑의 절정에서 여자 주인공이 갑자기 자살하는 대목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행복의 정점에서 생을 마감함으로서 사랑이 깨졌을 때 당해야 하는 비참한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고 하는데, 이런 결정에 대하여 분명한 입장은 정리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공감하는 분위기로 느꼈습니다. 저는 <미 비포 유>를 떠올렸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안락사를 선택하는 남자 주인공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에 죽음을 선택한다는 주장을 대하게 되면 그들은 정말 사랑한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고 누구에겐가 보여주기 위한 사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존 버거의 소설집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에서 책읽기를 멈추었습니다. 이 작품에 실린 「리스본」에서 존 버거는 엄마를 리스본에서 만났다고 했습니다. “왜 하필 리스본에서 나를 기다렸냐”라고 묻는 존 버거에게 엄마는 “리스본에는 전차가 다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했습니다. 정말 리스본에는 100년 된 전차가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고색창연한 나무로 된 전차도 있었구요. 그리고 존 버거는 전차의 위층 맨 앞자리에 않고 싶어했다고 하는데, 모퉁이를 돌 때 불꽃이 날리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리스본의 전체가 2층으로 되어있었던 것 같지는 않구요. 맨 앞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불꽃이 날리는 것을 볼 수 있는지도 분명치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23편이 작품들 모두 주옥같다고 하겠습니다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 가운에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만큼은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작가가 치매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삶을 관조하듯 써내려갔다고 해서 말입니다. 어머니의 임종 직후에 관하여 ”그 주 내내 아무 데서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벌어졌다. 잠에서 깨어나다가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을 기억해내곤 했다.(99쪽)“ 그렇습니다. 평소에 퇴근길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리곤 했기 때문에 지금도 퇴근하다가 무심코 핸드폰을 꺼내드는 제 버릇이 바로 이 책을 꼭 읽어보아야 할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