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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소담 - 오늘을 즐기는 당신을 위하여
권경민 지음 / 이담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저녁시간에 누군가를 만나려다보면 제일 먼저 부딪히는 문제가 장소인 것 같습니다. 늘상 가던 곳을 가는 것이 편하기는 하지만 만나는 상대에 따라서는 뭔가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아쉽습니다. 그런 점에서 권경민님의 <맥주 소담>은 만남을 위한 장소를 정하는데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 같습니다. 강남과 이태원 그리고 홍대앞도 부족하다 싶었는지 서울 근교까지 무려 서른 곳이나 되는 곳에 대한 깨알 같은 정보를 담았습니다. 청소년시절에 탐독했던 무협지에 나오는 무술의 비급처럼 숨겨두고 약속장소를 정할 때 깜짝 시연(試演)을 하듯 보여주면 상대가 놀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우리나라 맥주시장을 독점하던 두 맥주회사의 철옹성을 뚫고 들어온 외국산 맥주를 마실 수 있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외국산 브랜드가 워낙이 다양해서 역시 늘상 마시던 맥주를 마시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을 뒤쫓는 정신이 없거나, 그저 타성적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탓일 것입니다. 최근에 굳히기에 들어간 맥주에는 치킨 혹은 치킨에는 맥주를 말하는 ‘치맥’에, 맥주에 소주를 타 마시는 ‘소맥’까지 맥주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즐거움에 찬물을 끼얹는 문화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점도 아쉽다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도 저자가 <맥주 소담>의 2부로 구성한 맥주와 안주의 페어링, 조금 닭살 돋는 표현으로 ‘그 맥주의 소울푸드’ 역시 맥주마다 어울리는 안주를 주문할 수 있는 재치를 뽐낼 수 있게 만들어줄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 감춰둔 맥주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간략한 상식들도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선술집이란 우리말이 적당할 것 같은 펍(pub)이란 단어를 들으면 왠지 맥주 거품이 넘칠 듯한 커다란 잔들이 오가는 시끄러운 분위기의 맥주집이 떠오릅니다. 그래서인지 저자 역시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맥주파는 곳을 찾아가는 여행을 펍기행이라고 적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건물의 외경으로부터 내부 분위기 심지어는 셰프들이 음식을 만드는 장명과 그 음식 사진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사진을 곁들이고 있어 마치 해당 업소의 홍보물 같다는 느낌이 살짝 들기도 합니다. 아마도 실내외 사진에는 관계자 이외에 그곳의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영업을 하지 않는 날 사진작가의 요구에 따라서 세팅된 모습을 담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집에서 주력하고 있는 맥주와 대표적인 음식메뉴는 물론 가격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어 누구와 만나는가에 따라 약속장소를 정할 때 좋은 정보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대체적으로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다양한 나라의 맥주와 음식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어 색다른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의 관심을 끌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0곳의 펍 가운데 가본 곳이 딱 한 곳이 있습니다. 열두번째로 소개하고 있는 여의도 극동오피스텔에 있는 와바입니다. 이곳은 인근에 있는 남도식 음식을 깔끔하게 내는 <정오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2차로 가는 코스였습니다. 2차로 가던 곳이라서 이곳 특유의 맥주맛이나 영국식 수제 피쉬&칩스를 제대로 즐긴 기억은 별로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다음에는 다른 곳을 들르지 않고 바로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2부에서 소개하는 맥주와 푸드 페어링에서는 설마 이런 조합이 가능할까 싶은 페어링도 만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닭볶음탕과 비슷한 치킨 스튜나, 홍합탕과 비슷한 홍합 스튜에도 어울리는 맥주가 있다는 사실처럼 말입니다. 심지어는 퐁듀에도 어울리는 맥주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맥주는 그 다양성 때문에 역시 다양한 음식들과 궁합을 맞출 수 있는 모양입니다. 후기처럼 책의 말미에 붙여둔 ‘see you there’에서 우리나라에서 맛볼 수 있는 외국산 맥주가 무려 400종이나 되고, 우리나라의 맥주시장이 무려 연간 4조원 규모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젊었을 적 청계천 뒷골목에서 돼지갈비에 소주를 마시고는 옷에 밴 고기냄새를 뺀다는 핑계로 들렀던 종로3가의 로젠켈러의 시끌벅적하던 분위기가 새삼 그립기도 합니다.